런던의 뱅크사이드에 위치한 ‘테이트 모던’은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현대미술을 전시하는 공공미술관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컬렉션의 전시, 예술과 타 장르와의 융합을 통한 실험적인 시도가 끊이지 않고 진행되는 곳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울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이 날씨프로젝트로 태양을 미술관의 내부로 들여와 전시하기도 했고, 도리스 살체도(Doris Salcedo)는 미술관 로비공간을 세로로 쪼개서 마치 지진이 나서 갈라진 아스팔트를 연상시키는 전시를 만들기도 했다.
미술관 안에 들어온 태양과 바닥이 쩍쩍 갈라진 미술관이라니 상상은 잘 가지 않겠지만, 거짓말을 덧붙이지 않고 정말 그대로 이루어졌다.
굳이 이 현상에 대해 파고들자면 태양은 많은 양의 조명등과 거울 등을 활용하여 만들었고 갈라진 바닥면은 중장비를 이용해 쪼갰을 것이다. 하지만 미술관에서 이러한 진실이 무엇이 중요하랴. 눈앞에 보이는 시각적인 환영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의미를 해석하면 그뿐. 마술사가 마술쇼를 할 때 현란한 손동작에 속지 않으려고 눈알이 빠지도록 속임수의 여부를 살피다가 번번이 당하고 마는 헛수고는 하지말기를 바란다.
런던의 날씨는 1년 중 대부분이 흐리고 비가 온다. 해라도 비추는 날에는 모두들 나와서 태양을 만끽한다. 이내 사라질 햇님을 온몸으로 맞이한다고 할까. 런던 사람들에게 태양은 예술이 갖는 그 어떤 의미보다도 찬란하고 아름다웠으리라. 미술관에 들어온 태양은 거대한 조명이 만들어낸 쇼가 아니라 시민의 바람과 예술가의 창의성이 만들어낸 걸작이다.
지진이 일어난 바닥은 또 어떤가. 필자도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갑자기 어느 예술가가 미술관의 로비를 세로로 갈라버린다고 하면 선 듯 “네, 마음대로 하소서”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저번에는 태양을 띠우더니 이번에는 지진이다. 갈라진 틈에 끼어서 다리가 부러지는 사람에 발목을 삐는 사람까지 각종 사고까지 도출시켰다. 멀쩡한 바닥을 부수고 뚫어서 틈을 벌리고 심한 흉터를 남기는 불경한 짓을 저질렀으니 하늘이 노한게다. 한술 더 떠서 미술관이 무슨 놀이동산쯤이라도 되는 줄 아나보다. 미술관 내부의 로비가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경사면임을 이용해 달리기 트랙처럼 경계선을 그리고선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내려가는 퍼포먼스도 벌어진다. 이 모든 것이 런던의 현대미술관인 ‘테이트 모던’에선 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관이란 우람한 덩치를 자랑하며 위대한 ‘마스터 피스’를 보관하며 고요하고 성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발걸음조차 조심스러운 곳이 아니던가. 영국이란 나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앞서 말한 불경을 저질러도 된단 말인가. 정답은 ‘그렇다’인 모양이다. 엄밀히 따지면 현대미술관 또는 동시대미술관에서는 그렇다.
박물관이 역사를 보존하고 연구한다면, 현대미술관은 실험적이거나 창의적인 실험을 통해 미래를 개척하는 장소다. 미술관은 더 이상 예술품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에서 벗어나 공공과 소통하고 미래를 열어가는 교두보로서 자리해야한다.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건축가를 모셔다가 삐까뻔쩍한 미술관을 세우던지, 화력발전소를 개조하건 기차역을 개조하건 혹은 돼지우리를 개조하건 간에 현대미술관은 교육의 공간이자 놀이터가 돼야한다.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허나 확실한건 이 시대에 창조적인 미술관은 반드시 필요하다.
조두호 수원미술전시관 수석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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