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읽어 주는 남자]이보람의 ‘희생자-통곡’

오늘은 절기상 망종(芒種)이다. 씨 뿌리기 딱 좋은 시기라는 뜻이다. 모내기를 끝낸 곳이 많으니, 이즈음부터는 밭갈이와 더불어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망종 다음날이 현충일이다.

우리 역사에서 오뉴월은 사건이 많은 달이다. 5월은 지났으니 6월만 살펴보면, 흔히 ‘6월 항쟁’이라고 부르는 1987년 6월의 일들이 있고, 멀리는 6·25전쟁과 6·10만세운동도 떠올릴 수 있다. 현충일은 그 날 그 때 쓰러져간 이들을 추념하는 날이다.

이보람의 ‘희생자-통곡Ⅰ’은 본래 한글 제목 따로 없이 ‘Victim-LamentationⅠ’이라 명명한 작품이다. 연작으로 제작한 이 작품들은 보도 사진이미지를 이용한 것이다. 그가 다루고 있는 사건들은 범죄나 질병 같은 것이 아니라 인류가 처한 위험한 묵시록적 상황들과 관련이 깊다. 그것은 인류가 문명을 탄생시킨 이래 단 한순간도 멈춰본 적이 없는 전쟁에 관한 것이다.

‘희생자-통곡Ⅰ’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한 인물의 반신상을 화면의 중앙에 배치한 뒤 푸른빛이 도는 단색조로 그렸고, 그 둘레에 손가락과 건축물의 잔해, 검은 연기, 그리고 눈알들을 그려 넣었다. 우리는 파괴된 잔해와 검은 연기들 속에서 전쟁의 공포를 상상하게 되고, 무수한 손가락들에서는 차마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참혹을 후체험하게 된다.

그러나 얼굴을 가린다고 해서 이 세계의 현실을 보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다. 화면을 배회하는 눈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피눈물의 현실을 볼 수밖에 없는 비극에 대해 말하는 듯하다.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그의 손이고 눈이지만, 우리가 들어야 하는 것은 통곡의 외침일 것이다.

‘Lamentation’은 애통 한탄 통탄 비탄 통곡 탄식 애도의 뜻이니 ‘탄(嘆)’의 의미가 크다. 14세기 이탈리아의 화가 조토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슬퍼하는 통곡의 ‘Lamentation’을 제작하기도 했고, 그래서인지 이탈리아에서는 ‘라멘타찌오(lamentazione)’가 죽음을 애도하는 조가(弔歌), 비가(悲歌)를 가리키기도 한다. 대지와 인간에 대한 예의가 필요한 시기이다.

김종길 경기도미술관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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