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만년제, 조선시대 만년제 맞다

‘위치·규모’ 사료 기록과 일치… 진위 논란 종지부

조선 정조대왕이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위해 융릉을 건설하면서 융릉의 풍수를 도와서 보충하는 비보(裨補)의 목적으로 축조했던 화성 만년제의 위치와 규모를 둘러싼 논란이 일단락될 전망이다.

경기문화재단은 화성시 안녕동 만년제 일대에서 발굴조사 보고회를 갖고 조사 결과 만년제의 위치와 구조가 사료의 기록과 일치한다고 7일 밝혔다.

경기도 기념물 제161호 만년제는 지난 1996년 7월 경기도 문화재로 지정, 보호되고 있지만 그동안 일부 학자와 지역 주민들은 만년제의 위치와 규모가 다르다며 문화재 지정해제 신청소송을 제기하는 등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경기문화재단은 이번 조사에서 문화재지리정보 시스템을 통한 분석과 일성록(日省錄) 등 사료 기록을 대조한 결과 괴성(塊星)과 동, 서, 남, 북의 제방 규모, 하수문지 등의 구조와 위치가 일치한다고 밝혔다. 일성록(日省錄)은 정조가 세손시절부터 기록한 일기 형식의 글로 여기서 괴성을 만년제 가운데 위치한 동그란 모양의 인공섬이고 용이 엎드린 모양을 한 융릉의 여의주 역할을 하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특히 일성록에 나와 있는 괴성이 아직도 만년제 한가운데 남아있어 더 이상의 논란은 무의미하다고 재단측은 설명했다.

또 서쪽제방은 길이 181m, 폭 37m 규모의 넓은 광장형태인 점, 물이 빠져나가던 하수문지의 위치 등이 기록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경기도와 화성시는 이번 발굴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만년제 복원·정비계획과 기본설계를 포함한 활용 계획을 마련, 복원작업을 추진할 방침이다.

윤철원기자 ycw@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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