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어주는 남자]김해심의 ‘물고기 우산’

싱싱하고 맑은 향기가 천지에 가득하다. 봄은 기진하여 산하에 스몄고, 여름이 완연한데 깊지 않다. 새벽의 푸른 공기가 아침 안개가 되고, 낮 더위가 기승을 부리나 싶더니 하늬바람에 밀린다.

자연미술이란 게 있다. 자연에서 자연과 더불어 자연의 이치에 따라 자연의 기술과 재료로 자연의 미학을 찾는 미술이다. 미술이라고는 하나 자연이 시작과 끝이니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그저 자연미술가들이 남긴 흔적들뿐이다. 우리는 사진과 영상으로만 살필 수 있을 따름이다. 간혹 그들이 들고 온 자연의 껍질이나 씨앗, 가지, 잎, 열매, 꽃들로 이뤄진 설치물들을 볼 수도 있고, 사계절 워크숍에 동행하는 행운을 누린다면 그 실체를 직접 볼 수도 있다.

김해심의 ‘물고기 우산’은 2001년 충남 공주시 근방의 원골 마을에서의 여름워크숍 작품이다. 자연미술가들은 스스로를 ‘야투(野投)’라 부르기도 하는데, ‘들에서 던지다’라는 이 말은 ‘자연에서 표현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자연과의 교감을 우선하는 이 표현의 방식은 김해심의 작품에서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는 우선 원골 마을을 어슬렁거리며 걸었을 것이다. 천천히 걷기와 기웃거리기, 어슬렁거리기는 첫날이나 둘째날까지 지속된다.

그는 불현듯 마을 옆을 흐르는 도랑에 앉아서 물속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산 아래 마을 원골의 도랑은 맑고 깨끗해서 작은 물고기들이 살기 좋은 곳이다. 그러나 자연천에 가까운 도랑이지만 한 여름 뙤약볕에 노출된 물 밑은 물 밖만큼이나 덥다. 물고기들이 숨어들 그늘이 거의 없다. 그리하여 그는 물고기들을 위한 파라솔 우산을 만들어 주기로 결심한다. 지천에 깔린 들풀들의 잎을 따다가 어여쁜 우산을 띄우는 것이다. 그는 앉아서 그렇게 여섯 개의 우산을 만들어 주었다.

10년만의 가뭄이란다. 봄비가 오는가 싶더니 곡우지나고 비 소식이 감감하다. 그저 스쳐가는 소나기 떼가 있었을 뿐이다. 사람 사는 일이 자연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삶이다. 자연의 소리를 듣고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일이 그러나 점점 더 힘든 세상이다. 싱싱한 6월의 지속과 원골 마을의 물고기들을 위해서라도 비가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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