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어주는 남자] 이윤엽의 ‘황새울 가족’

참 큰일이다. 봄 가뭄이 길다. 연일 아침 뉴스에서 가뭄 걱정하는 눈치가 크다. 옛일 같으면 기우제(祈雨祭)를 지내거나 냇물과 저수지의 물을 당겨서 논밭의 갈증을 달래곤 했을 터. 큰 강에 보를 세워 물막이를 했으나 그 물을 쓸 수 없다고 하니 속이 타고, 강물의 지류를 따라 세워 둔 저수지는 다 말라서 속껍질을 드러냈다고 하니 화가 치민다. 예부터 정치(政治)란 치수(治水)였다. 물을 다스릴 줄 알아야 나라가 바로 섰다. 우리는 농사가 근본인 나라였고 지금도 그렇다.

이윤엽의 ‘황새울 가족’은 평생을 농사를 짓고 살았던 가족의 풍경이다. 황새는 백로와 비슷한 황샛과의 새이고 울은 ‘골’로써 골짜기나 마을이다. 황새울이란 지명은 방방곡곡에 널려 있다. 황새가 많았던 탓이기도 하거니와 풍수상 마을마다 뒷산으로 주산이 있어 큰 새들이 날아들곤 했기 때문이다. 황새는 ‘한새’ 즉 큰 새를 뜻하기도 하니까.

이윤엽의 황새울은 경기도 평택의 대추리다. 2007년을 전후해 대추리와 그 옆 마을 도두리는 미군기지 확장으로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해방과 6·25전쟁이 끝난 후 갯벌이나 다름없던 곳에 가난한 사람들이 몰려와 농토를 개척했다. 뼈가 빠지고 살이 헤지도록 밤낮으로 일궈서 풍년을 부르는 땅으로 바꿨다. 야트막한 산하의 언저리에 둥지를 틀었던 사람들은 이제 다른 곳에서 풍년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이윤엽의 목판화는 험한 땅과 세월을 견디고 풍요의 두레공동체를 세웠던 사람들의 초상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굵은 칼맛으로 사람과 동물이 한 가족을 이룬 이 작품을 대추리에 벽화로도 그렸었다. 할머니에서 손자까지, 그리고 소나 강아지 할 것 없이 모두 해맑게 웃고 있는 이 초상에서 우리는 공동체의 신명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다.

어렵고 힘이 들 때 더 아름답고 밝은 것이 두레정신이다. 마음이 진심이면 하늘도 감동이랬다. 도시 삶을 사는 사람들도 마음으로 비를 부를 일이다. 신명을 모아 하늘을 감동시킬 일이다.

김종길 미술평론가·경기도미술관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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