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어주는 남자]남궁산의 ‘생명-마음의 그루터기’

아뿔싸! 벌써 6월이 다 갔네? 그렇다. 새해가 엊그제였는데 한 해의 반이 지나가고 있다. 후회해도 소용없다. 오늘을 더 충실히 살면서 내일을 준비할 일이다. 과거와 미래가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바로 지금, 여기의 삶이 더 소중하니까.

어제가 6·25전쟁 62주년이었다. 전쟁을 몸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이제 얼마나 될까? 칠순을 넘긴 아버지조차 열 살 무렵의 아이였을 때이니, 아버지에게도 전쟁의 기억은 희미하다. 팔순의 할머니, 할아버지나 되어야 그 전쟁을 통각의 기억으로,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상흔으로 가지고 계실테다.

남궁산의 ‘생명-마음의 그루터기’를 본다. 큰 나무의 밑동이 싹둑 잘려 나갔다. 둥치가 없으니 나무는 영락없이 죽은 꼴이다. 그런데 웬 걸, 둥치에서 가지 하나가 삐죽 자라나 싹을 틔웠다. 민둥산의 대지에 뿌리박은 저 나무의 힘찬 뿌리가 생생하다. 생명을 싹 틔우려는 나무의 죽음이 또한 숭고하다. 싹 틔운 나무의 생명을 환하게 밝히는 푸른 하늘과 ‘밝달’의 저 흰 기운과 점점이 하늘을 떠도는 태점(態點)들이 기운차다.

그리고 나는 저 ‘밝달’의 둥글고 흰 세계에서 새 생명의 싹과 붉은 태점의 기운과 더불어 환하게 웃고 있는 새 한 마리를 본다. 우리 민화의 ‘까치와 호랑이’가 그렇듯이 이 그림도 ‘까치와 새 싹’의 구도로 구성되었는바, 세화(歲畵)로서 복이 들고 악을 막는 길상벽사(吉祥辟邪)의 의미가 크다. 그는 부침이 극심했던 20세기 한국의 현대사를 돌아보며 이 작고 아름다운 목판화를 완성했을 터다. 역사는 저 그루터기처럼 누군가의 의자가 되고 썩어서 거름이 되고 다시 대지가 된다. 그 역사에서 새사람들이 나와 새 세상을 틔우고 열 것이다.

지난 토요일 오후 6시18분 서울 중구 묵정동의 어느 병원에서 오천만둥이 여아가 태어났다. 생명은 어린싹처럼 계속 이어진다. 전쟁이 끝나고 한 갑자가 돌았으니, 잊지 말아야 할 기억투쟁의 역사를 가슴에 새기며, 새날 새 뜻 새사람의 역사를 열일이다.

 

김종길 미술평론가·경기도미술관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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