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박찬호의 통은 컸다. 2천400만원은 연봉도 아니다. 프로야구 선수의 최저 임금이다. 그 밑으로 주면 구단주가 감옥 간다. 천하의 박찬호가 그런 돈에 서명했다. 여기에 6억원짜리 기부금 약속도 있다. 연봉이 부족하면 옵션까지 털어 넣을 계산이다. 그만이 할 수 있는 계약이다. 1994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이후 18년. 그간 번 돈은 8천876만달러(한화 1천억원)다. “연봉에 관심 없다. 한국 야구 발전을 위해 왔다”는 발표에 모두가 “역시 박찬호”라며 박수를 보냈다.
지금도 많은 아이들은 ‘야구 재벌’ 박찬호를 꿈꾸며 운동장을 뛴다. 하지만 박찬호는 박찬호일 뿐이다.
4월19일. 전혀 다른 ‘2천400만원 짜리’의 얘기가 펼쳐졌다. LG 트윈스의 좌완투수 이승우(24)다. 그의 맞상대는 한화의 괴물투수 류현진, 연봉만 4억3천만원이다. CF니 뭐니 다 빼고 연봉만 쳐도 이승우는 류현진의 18분의 1이다. 말도 안 되는 이날 대결의 승자는 이승우였다. 5.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낸 그의 얘기가 ‘기적’으로 표현됐다. 장충고를 졸업할 때만 해도 유망주였다. 그러던 그가 프로 입단과 동시에 ‘토미 존 서저리(인대접합수술)’를 받으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지금은 프로야구 굴욕의 상징인 ‘2천400만원 짜리 선수’다.
많은 아이들이 절대 자신의 미래로 꿈꾸지 않는 선수다. 그런데 이런 이승우의 처지조차 부러운 수백 수천의 야구인생들이 있다.
매년 700명의 야구실업자 생산
작년에만 777명이 프로야구에 ‘이력서’를 냈다. 이 중에 ‘취업’에 성공한 선수는 고작 94명이다. 그나마 신생팀 엔씨가 많이 뽑아준 덕이다. 예년 같았으면 80명에 그쳤을 일이다. 아마도 떨어진 700명의 꿈도 ‘야구 재벌’ 박찬호였을 거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현실은 참담하다. 1천억원은 커녕, 4억3천만원도 아니고 2천400만원도 아니다. 선수생활 자체가 박탈됐다. 야구 외엔 할 줄 아는 게 없는 애들일 텐데, 그런 700명이 매년 야구장에서 쫓겨나고 있다.
“현재 53개 고등학교 야구팀으로는 선수 수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얼마 전 KBO(한국 야구 위원회)가 10구단 창단을 유보하면서 밝힌 사유다. KBO는 매년 700명의 선수 생명을 끊어왔다. 비율로 환산해보니 실업률은 90%다. 흔히들 청년 실업률이 높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한다. 통계청의 5월 말 고용현황에 나타난 청년 실업률이 8.0%다. 통계만을 놓고 보면 KBO는 차라리 실업자 찍어내는 공장이다. 그렇게 된 이유가 바로 ‘자리 부족’이다. ‘받아주고 싶지만 자리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10구단 창단의 목적은 그 숨통 좀 터보자는 거였다. 그런데 남도 아닌 KBO가 그 해결책을 틀어막았다.
KBO의 ‘선수 수급 문제’라는 말 속에는 ‘팀을 늘리면 프로야구 수준이 떨어질 것’이라는 뜻도 섞여 있던데… 욕먹을 각오하고 한번 따져보자.
KBO 탐욕이 한국 야구 죽인다
한국 프로야구의 수준이 어디쯤이라고 생각하나. 미국 메이저리그에는 근처도 못간다. 기껏해야 마이너리그 중에 트리플 A니 더블 A니를 따지는 실력이다. 몸집이 똑같은 일본 야구와의 격차도 까마득하다. ‘대한민국의 국민 타자’는 ‘일본야구의 천덕꾸러기’가 됐다. ‘대한민국의 불방망이’는 ‘일본 야구의 솜방망이’가 됐다. 그렇게 망신당하고 쫓겨 돌아온 선수들이 지금 한국에서 홈런 1, 2위 하고, 타율 1, 2위 하고 있다. ‘수준 떨어진다’며 10구단 창단을 막은 KBO의 수준이 이렇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선수 수급’을 얘기하고 무슨 낯으로 ‘야구 수준’을 들먹이나.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지.
‘관중 600만 시대를 맞고 보니 돈맛을 알았다.’, ‘우리끼리만 계속 나눠 먹고 싶다’, ‘욕 듣는 건 잠깐이고 돈 챙기는 건 영원하더라’, ‘그래서 10구단 창단을 유보한 거다’라고.
김종구 논설실장
[이슈&토크 참여하기 = KBO → Kill Baseball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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