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어주는 남자]민정기의 ‘풍요의 거리’

휴가철이다. 철을 따르는 것이 건강에 좋다. 사계절에서 여름과 겨울의 이계절로 변하는데다, 열대성 기후현상을 보이는 요즘 날씨에는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동이 세고 생산이 낮은 기형적 국가가 바로 우리니까 더더욱.

오직 노동의 시대에서 삶의 질을 따지기 시작했던 시대는 1980년대에 와서다. 컬러TV가 보급되면서 좀 더 개방적인 문화 환경에 접하게 되었던 것인데, 드라마와 영화는 물론이고 정부가 나서서 3S정책을 폈으니 사회는 빠르게 총천연색 자본주의로 변화했다. 그러니 사실 이때의 휴식은 지금의 힐링이 아니라 나쁜 분출에 가까웠다.

민정기가 1981년에 발표한 ‘풍요의 거리’는 당시의 풍경을 몽타주하듯 그린 작품이다. 풍자와 해학의 재미를 은연 중에 깔고 배치할 뿐만 아니라 숭고와 비장의 순간들조차 ‘낯설게 하기’로 뒤흔들어 버리는 그의 초기 작품들 중 일품이다. 푸른 산하에 설치되는 거대 간판들에서 도시 산업화의 확장을 볼 수 있다면, 일명 ‘영화예술향상’의 제시로 말초 신경을 자극했던 에로영화의 섹슈얼리티는 황홀하다. 그 주변들로 배부른 자본가, 육체미, 과학자, 국악을 뒤섞었다. 뒤죽박죽의 현실이다.

오른쪽에는 슈퍼맨과 원더우먼, 이소룡이 보이지 않는 악당과 대결하는 극적 장면을 그렸다.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영화 속 영웅들이다. 우리는 세상을 구하는 그들에게 현실을 맡겼고, 그들은 영화에서 현실로 넘어오지 못했다. 현실은 늘 부조리했다.

2012년의 풍요의 거리를 그린다면 무엇이 담길까? 현실은 없고 오직 비현실과 가상현실이 뒤섞여서 삶의 황홀을 가장했던 1980년대의 풍요가 여전하지 않을까? 더 강력해진 영화, 스포츠, 섹스 산업은 이제 정책도 비현실도 가상현실도 아닌 지극한 현실이므로.

몸과 마음의 온전한 쉼과 치유를 위해서 휴가를 떠나야 한다. 마음의 풍요를 찾아 떠나야 한다. 제주도 올레길이든 지리산 둘레길이든 산사든 바다든 삶의 사유를 위한 ‘사유의 여행’이 필요하다. 풍요의 거리는 결국 내 안에 있는 것이니까.

 

김종길 미술평론가·경기도미술관 교육팀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