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섭 칼럼] 슬로건 전쟁이 시작됐다

이연섭 논설위원 yslee@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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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경기지사가 12일 새누리당 대선 경선 레이스의 막차를 탔다. 김 지사는 이날 경선 참여를 선언하며 자신의 슬로건으로 ‘마음껏! 대한민국’을 내세웠다. “학생들은 마음껏 공부하고, 청년들은 마음껏 일하고, 노인들은 마음껏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자유롭고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의미”라고 캠프측은 설명했다.

12월 19일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 대선주자들의 슬로건 경쟁이 뜨겁다. 저마다 내건 슬로건은 대선 후보가 지향하는 정치를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새누리당 유력 주자인 박근혜 의원은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그는 국민행복이 우선임을 강조하며, 국정운영의 패러다임을 국가에서 국민으로, 개인의 삶과 행복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은 ‘걱정없는 나라’로 정하고 국민의 3대 걱정인 교육·직장·주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안상수 전 안산시장은 ‘빚 걱정없는 우리 가족, 변방에 희망있는 나라’를, 김태호 의원은 ‘낡은 정치의 세대교체’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대선 슬로건 ‘국가에서 개인으로’

민주통합당 후보들도 자기 색깔의 슬로건을 치켜들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손학규 고문의 ‘저녁이 있는 삶’이다. 퇴근 시간이 넘어도 일에서 손을 놓지못하며 개인과 가정 생활을 희생당하는 중산층·서민을 위로하는 구호로, 개인들의 현실적 욕구를 문학적 표현에 담아 호평을 받고 있다.

문재인 고문은 ‘사람이 먼저다’로 정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홍익인간(弘益人間)’과,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과 맞닿아 있다”는 설명이다. 김두관 전 경남지사의 ‘내게 힘이 되는 나라, 평등국가’는 성장의 과실을 서민과 중산층에게 적극적으로 나누는 권력을 지향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또 의사 출신인 김영환 의원은 ‘울화통 터지는 나라, 국민 화병을 고치겠다’를, 정세균 의원은 ‘빚 없는 세상, 편안한 나라’를, 조경태 의원은 ‘민생통합 대통령, 국민통합 대통령’을 슬로건으로 했다.

이번 대선 슬로건은 ‘개인’을 중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국민들이 국가의 발전보다는 개인의 자아실현과 행복에 무게중심을 두고있음을 보여준다. 15대 대선의 ‘준비된 대통령’(김대중 후보), 16대 대선의 ‘새로운 대한민국’(노무현 후보) 등 과거의 슬로건과 비교해보면 뚜렷한 변화다.

말의 성찬보다 소통, 정책이 중요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슬로건은 선거전의 백미다. 정치현장에선 잘 만든 슬로건 하나가 100분의 연설이나 1천명의 선거운동원보다 낫다고 말한다.

슬로건은 기본적으로 쉬우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겨야 한다. 1992년 미국 대선에서는 민주당의 빌 클린턴 후보가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Economy, Stupid!)’를 들고 나왔다. 짤막하면서 인상 깊은 구호는 미국인들의 표심을 자극, 조지 부시를 누르고 클린턴을 백악관으로 안내하는 길잡이가 됐다.

11월 재선을 노리는 오바마 대통령의 슬로건은 ‘앞으로(Forward!)’다. 자신의 업적을 기반으로 나아가겠다는 뜻을 담았다. 4년전 그는 ‘그래, 우린 할 수 있어(Yes, We Can!)’로 승리한 바 있다.

대한민국도 12월 대선을 앞두고 슬로건 경쟁이 치열하다. 후보들마다 그럴듯한 슬로건을 들고 나와 목청을 높인다. 말의 성찬이다. 국민들을 잘살게 해주겠다고,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유권자들을 유혹한다. 하지만 ‘어떻게’가 빠져있다. 추상적 이미지가 강하다. 자칫 홍보전쟁으로 변질될 우려도 있다.

중요한 것은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무조건 잘살게 해주겠다고 말만 번지르르 하기보다는,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정책으로 뒷받침 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시대 정신과 미래 비전이 담겨 있어야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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