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어주는 남자]신학철의 ‘모내기’

 

봄 가뭄이 극심하더니 여름이 되면서부터는 연일 장마다. 덥고 습하니 짜증이 심하다. 조그만 일에도 사람들은 쉽게 감정을 드러낸다. 환경이 인간을 지배하지는 못하겠지만 여러 면에서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7월 17일은 제헌절이다. 1948년에 제정됐으니 올해로 64주년이 됐다. 예전에는 4대 국경일 중의 하나로 지정 공휴일이었으나 지금은 잊혀졌다. 특히 헌법의 철학과 정신은 오늘날 많은 부분에서 위협받고 있다.

헌법 제22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예술 창작 활동에서 ‘창작의 자유’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 맥락에서 신학철의 ‘모내기’는 20세기 말의 한국사회가 보여준 참혹한 헌법정신이 아닐까 한다.

‘모내기’는 1987년 여름 그림마당 민의 ‘통일전’에 출품했던 작품으로 신학철의 고향 김천의 동네풍경을 그린 것이다. 물론 그것은 그가 통일 후를 상상하며 그린 ‘통일화’로서의 풍경이다. 화면의 테두리를 천도복숭아를 그렸으니 이곳이 무릉도원이라는 얘기일 터인데, 그림 아래는 모내기하는 농부들과 더불어 한 농부가 쟁기질로 3·8선의 철책, 탱크, 포탄을 비롯해 온갖 사업자본의 쓰레기들을 바다에 쳐 넣고 있는 장면이고, 위는 백두산 아래에서 뛰어노는 아이들과 풍년의 가을걷이를 즐기는 농부들을 그린 장면이다. 신학철은 우리 조국의 통일을 생태적인 농촌공동체의 복원으로 그렸고 검찰은 그것을 북한찬양으로 기소했다.

이 작품은 1989년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로 압수되었고 1999년 11월에 유죄확정판결을 받았다. 2000년 4월 시민단체와 예술인단체가 유엔 인권위원회에 이 사건을 제소했고, 2004년 4월 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모내기’에 대한 판결이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9조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으니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작가를 위한 구제조치를 취하라고 결의했다. 구제조치는 유죄판결에 대한 보상, 유죄판결 무효화, 그림의 원상복구 및 반환이다.

예술적 상상을 법이 규제하고 검열하면 그 사회는 결코 민주사회가 아니다. 일명 ‘모내기 사건’은 나쁜 환경을 조성했고 예술가의 상상을 제한했다. 비온 후의 무지개처럼 상상의 무지개가 펼쳐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건강해진다. 장마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김종길 미술평론가·경기도미술관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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