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님 토론이 어땠는지 의견 좀 주세요.” 당황스러웠다. 토론회가 있는 줄도 몰랐다. 몰랐으니 못 봤고, 못 봤으니 해줄 얘기도 없었다. 망설인 끝에 솔직해지기로 했다. “미안해요. 급한 일 때문에 못 봤습니다.” 민주통합당의 23일 MBN 토론회는 그랬다. 와이셔츠 차림의 후보 8명은 진지했다. 날 선 공방도 있었고 격정적 토로도 있었다. 대권 경쟁의 초반 판세를 거머쥐려는 안간힘이 역력했다. 하지만 들어주는 이가 없었다. 유권자들이 귀를 닫고 눈을 감았다. AGB 닐슨미디어리서치가 발표한 이 날의 시청률은 1.43%다.
새누리당이라고 다르지 않다. 하루 뒤 KBS에서 토론회가 있었다. 박근혜 김문수 임태희 안상수 김태호 후보가 저마다 포부를 펼쳤다. 직격탄이 오갔고 긴장감도 있었다. 문제는 같다. 봐준 국민이 없었다. 같은 기관에서 조사한 시청률이 3.1%다. 민주당보다 높다고 좋아하기엔 너무도 민망한 수치다. 3%든 1%든 방송계에서 프로그램 간판을 내릴 수준이다. 드라마였다면 벌써 조기종영됐을 거다. 5년 전 이 맘 때 뜨거웠던 열기를 기억하는 새누리당이 받은 충격은 더 클 수 있다. 그때의 시청률은 6.2%였다.
여가 헤매고 야가 죽 쑤고 있는 그때 18.7%의 시청률을 기록한 후보가 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다. 안 원장은 23일 SBS 예능 프로그램인 ‘힐링캠프’에 출연했다. 개그맨과 방송인, 탤런트와 마주 앉아 한 시간여를 보냈다. 시종일관 나눈 대화라곤 대권과 무관한 신변잡기였다. 그랬는데도 18.7%다. 수도권 기준으로 따지면 21.8%다. 파장도 컸다. 여야의 13명이 펼친 설전은 ‘치열한 공방’이라는 화두로 하루 만에 사라졌다. 하지만 안 원장이 장난하듯 던진 ‘입대 비화’, ‘학교 성적’ 얘기는 며칠을 두고 검색어에 남았다.
3.1%(與) 대 1.4%(野) 대 18.7%(安)
3.1%(與) 대 1.4%(野) 대 18.7%(安). 2012년 7월 말 시청률로 뽑는다면 대통령은 안철수다. 시청률만 그런 게 아니다. 안 원장의 TV 출연에 민주당 ‘4번 타자’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은 17%에서 10%로 곤두박질 쳤다. 새누리당의 ‘지명타자’ 박근혜 후보도 기우뚱거렸다. 보름 전 40.4%(朴) 대 19.6%(安)에서 35.0%대 36.7%로 뒤집혔다(31일 리서치뷰 발표). 나머지 여당 4명과 야당 7명은 아예 ‘벤치 워머(후보 선수)’로 물러앉았다. 이런 변수를 대입해 계산해 본 ‘12월 결론’은 이거다. ‘안 원장은 킹이 되거나 킹을 만들 것이다.’
정치 전문가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결론에 굳히기를 더해주는 분위기가 정치권 안에 있다. 현실을 제대로 보지 않는 시청률 분석이다. ‘런던 올림픽 때문’이라고도 하고 ‘예능 프로그램의 특성 때문’이라고도 한다.
런던 올림픽은 7월 28일 새벽 5시에 시작됐다. 민주당 토론회는 23일에 있었고 새누리당 토론회는 24일에 있었다. 두 토론회의 시청률을 빼앗아갈 만큼 흡입력 있는 올림픽 중계가 있었을 리 없다. 더구나 18.7%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안 원장의 TV출연도 같은 23일이었다. 어불성설이다. 예능 프로그램 탓도 억지다.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도 같은 ‘힐링 캠프’에 출연했다. 정세균과 손학규 후보도 케이블 방송(tvN)에 출연해 예능감을 발휘했다. 그래놓고 시청률에서 밀리니까 안 원장 출연만 트집 잡으려 한다.
정치권의 잘못된 진단, 12월도 위협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특권 포기 공약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유권자를 배신한 정두언 의원의 체포동의안 부결. 국회를 방탄 삼아 비리 수사를 막아선 박지원 대표의 소환 거부. 부정한 수단으로 의원배지를 달고도 수억원의 세비는 챙기겠다며 버티는 이석기 김재연 의원. 이런 게 원인이다. 생각하면 3.1%, 1.4%의 시청률도 후한 편이다. 국민이 다 아는 이유를 두고 정치권만 딴소리를 한다. 올림픽이 어떻고, 예능 프로그램이 어떻고…. 진 이유를 모르는데 이길 해법이 나 올 리 있나.
‘정치권의 시청률 망신이 12월의 대선 망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이렇게 떠드는 주당(酒黨)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정치권은 명심해야 한다.
김종구 논설실장
[이슈&토크 참여하기 = 시청률 대통령 안철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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