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허파’ 갯벌에서 즐기고 배우다
하지만 도시화·산업화로 아파트숲이 들어서면서 아이들의 땅(놀이터)은 사라졌다. 그 자리를 컴퓨터 온라인 게임과 플라스틱으로 꾸며진 실내외 어린이놀이터가 꿰찼다.
아파트속에서 자라고 있는 동심들에게 자연으로 돌아가 한바탕 신나게 놀아보자는 취지의 이색프로그램이 의왕문화원에서 열리고 있다. 목적지는 ‘바다의 허파’ 갯벌이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6일, 충청남도 태안군 별주부마을 갯벌은 아이들의 천국으로 변신했다.
# 친환경 놀이터…아이들 갯벌을 접수하다
태안은 ‘기적의 여행지’다. 지난 2007년 발생했던 태안 기름유출사고로 되돌릴 수 없을 것만 같았던 태안의 바다와 해변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름다운 자태로 아이들을 맞이했다. 넓은 백사장과 울창한 숲을 품고 있는 별주부마을 해변은 아이들이 잠시 쉬어가기에 더없이 매력적인 장소였다.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아이들의 코끝을 자극하고 시원한 바닷바람이 살갗을 어루만진다. 아이들은 서해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울창한 숲 아래 자리를 잡았다. 솔숲의 촉촉한 모래는 도시 아이들에게 색다른 촉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아파트 단지 놀이터 모래보다 작고 색깔이 투명해요”, “모래가 발가락 사이에서 간지럼을 자꾸 태워요”, “촉감이 부드러워요”
아이들은 햇볕 아래 반짝이는 모래 촉감에 푹빠져 연신 키득키득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오전 11시, 썰물 때 70여명의 아이들은 엄마, 아빠와 함께 본격적인 맛조개잡이를 위해 드넓은 갯벌로 갔다. 이 곳에서 잡히는 조개는 긴맛과에 속하는 맛조개. 맛조개는 길이가 6~10cm인 황갈색의 원통형태로 살이 보드랍고 감칠맛이 일품이다. 맛조개가 갯벌 깊숙이 자라고 움직임이 워낙 빨라 채취가 어렵다.
별주부마을 주민의 맛조개잡는 시범이 이어졌다. 베테랑 어민의 재빠른 손놀림 끝에 맛조개가 잡히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우선 겉모래를 한번 쓸어내면 송송 뚫린 직경 1cm 미만의 구멍이 보이는데 그곳에 소금을 뿌리면 맛조개가 입을 벌리며 더듬이를 드러낸다. 이때 더듬이를 재빨리 잡고 호미로 모래를 훑어내면 맛조개가 올라온다. 맛조개가 들어갈 것 같다면 더 힘차게 당기면 된다.
아이들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호미를 들고 생전 처음 해보는 조개잡이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호기심 가득찬 눈빛으로 조용하던 갯벌을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던 아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숨을 쏟아냈다. 푸념도 이어졌다. “아! 놓쳤어요~엄마, 조개가 우사인 볼트보다 빨라요”, “로또 당첨보다 맛조개 잡기가 힘드네요. 하하호호”, “수산시장 가면 사먹을 수 있는 조개녀석 오늘 엄청 비싸게 구네.”, “목도 아프고 손목도 아프고 비오듯 땀나요. 그래도 잡고말테다 맛조개야, 기다려라.”
뜨거운 여름 태양 아래 갯벌에서 맛조개잡기는 아이들에게 ‘노동’에 가까웠다. 또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갯벌 체험의 하이라이트는 무엇보다 맛조개를 잡는 순간. 아이들은 맛소금을 맛조개가 있을 법한 갯벌의 구멍에 뿌리고 잠시 후 맛조개가 슬며시 고개를 내밀고 인사를 하는 순간을 눈빠지게 기다렸다.
한 10분쯤 지나자 갯벌 여기저기서 맛조개를 잡은 승자의 환호와 맛조개를 놓친 패자의 탄성이 교차했다.
“우와~ 잡았다.”, “에이~ 또 도망갔네.”
맛조개가 쏙 올라오는 모습이 어찌나 재미있고, 신기한 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맛조개 잡이에 매달렸다.
초등학교 저학년들도 처음에는 맛조개살이 살짝 올라오는 것을 보고 무서워하더니 차츰 신기해 하며 자기가 하겠다고 호미로 열심히 맛조개 구멍을 찾았다. 아이들은 다른 쪽으로 이동하면서 맛조개를 잡았다. 1시간을 쭈그리고 앉아서 맛조개를 잡기위해 갯벌을 캐다보니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저렸다. 새삼 그동안 먹은 조개들이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내 입으로 들어온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며 아이들은 입을 모았다.
손맛을 본 아이들은 자리를 뜰 줄 모르고 맛조개잡이 재미에 빠졌다. 아이들만큼이나 신이 난 엄마, 아빠도 호미질하느라 손과 다리에 생채기가 나는 줄도 모르고 땀 꽤나 흘렸다.
이번 갯벌체험 행사에 참여한 이영현(의왕 갈뫼초 3학년·여) 학생은 “엄마, 동생과 함께 시원한 바닷가에 넓게 펼쳐진 갯벌에서 맛조개잡이가 특히 재미있었고, 갯벌 생태에 대해 많이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됐다”며 “오늘 저녁메뉴는 아빠와 함께 조개탕을 끓여 먹을 것”이라고 즐겨워했다.
이날 생애 첫 갯벌나들이에 나선 중학생 3인방도 있었다. 의왕 모락중학교 1학년 동창사이인 정민철, 정보웅, 최진호군은 “끈적끈적 찰흙 같은 갯벌 속에 발을 넣으니 처음엔 기분이 좀 이상했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정민철군은 “평소 친구들과도 컴퓨터 온라인에서 만나 게임을 즐겨했는데 오늘은 친구들과 얼굴을 맞대고 발빠른 맛조개잡이를 하니 협동심도 생기는 것 같고 색다른 경험이었다”며 “무엇보다 책이나 TV에서만 봐왔던 갯벌에 직접 와서 갯벌생태 체험을 하는동안 갯벌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더위를 많이 타 유독 땀을 많이 흘리던 정보웅군도 “갯벌에 사는 생물관찰과 더불어 ‘보고’, ‘만지고’, ‘먹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올 여름방학 최고의 하루를 보냈다”며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날 학부모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두 자녀와 참여한 유보영(40·내손동)씨는 “여름방학 동안 아이들과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싶어 참여하게 됐다”며 “수억년 세월이 만든 생명이 살아숨쉬는 땅, 갯벌에서 저 또한 동심으로 돌아가서 색다른 경험을 하게 돼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싱그런 갯내음 속에서 ‘맨발의 동심’을 만끽할 수 있었던 이번 갯벌체험은 의왕문화원(원장 박용일)이 2년째 진행해오고 있는 야심작이다.
박용일 원장은 “요즘 초·중고생들은 방학 때도 보충수업받으랴, 학원가랴, 방학숙제하랴 몸이 두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직장생활을 하는 어른들만큼이나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며 “힘든 아이들에게 자연 속에서 치유의 시간을 제공하자는 의미에서 갯벌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했는데 반응이 아주 좋다”고 말했다.
이어 박 원장은 “세계 5대 갯벌로 일컬어지는 우리나라 서해안 갯벌은 육상에서 배출하는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기능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영양분이 풍부해 생태적 다양함을 갖추고 있어 아이들에게 좋은 체험학습의 마당이 되기에 손색이 없는 최고의 천연놀이터”라며 갯벌체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오세진 사무국장은 “의왕문화원은 지역 고유문화의 계승, 발전은 물론 향토사의 보존, 전통문화육성, 문화축제, 청소년 문화예술활동지원 및 문화학교와 평생교육 프로그램 운영 등 문화원의 기본적인 역할뿐만 아니라 지역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생활 프로그램을 개발해 창의적인 문화활동과 참여기회를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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