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독도는 우리 땅입니다.” 2006년 4월 25일. 현직 대통령의 사상 첫 독도담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문장의 맺고 끝음이 분명했다. 독도가 지닌 역사적 사실들을 정확하게 짚어 갔다. 문구 문구마다 확신에 찬 자신감이 배어 나왔다. “세계 평화를 위한 일본의 결단을 기대합니다”는 마무리에서는 억누른 감정 속에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이 날의 8분짜리 담화문은 지금도 노무현의 명연설 중 최고로 남아 있다.
당시 한국과 일본은 EEZ 재협상을 앞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한국은 독도 주변 해저지명을 제안하려 했다. 일본은 이 경우 독도 주변 탐사를 강행하겠다며 버텼다. 이 살벌한 분위기에서 한국 대통령이 특별 담화를 예고하고 나섰다. 해방 이후 한 번도 없었던 독도 관련 특별 담화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기질’을 너무도 잘 아는 일본이었다. 적잖게 긴장했고 언론마다 담화 내용에 대한 예상을 쏟아내기 바빴다.
그런데 막상 담화 뒤의 반응은 냉랭했다. ‘한국정치 내부용’이라는 한마디로 끝나 버렸다.
그리고 6년.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에 갔다. 화려한 담화문도 없었다. 점퍼 차림으로 그냥 갔다. 경비대원들과 마주 앉아 피자 먹고 콜라 마시고 왔다. 내 나라 대통령이 내 나라 땅에 간 일이다. 대통령이 수원에 오고 파주에 온 것과 다를 바 없다. 국민도 그렇게 생각했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10일 국민 750명을 상대로 조사했더니 66.8%가 ‘잘했다’고 했다. 부정적 평가는 18.4%에 불과했다(95% 신뢰 수준·표본 오차 ±3.65%).
‘독도 한일전’은 시작됐다
바다 건너 일본은 쑥대밭이 됐다. 주한 일본 대사를 뽑아갔다. 국제사법재판소로 가겠다며 난리다. 처음 보는 일이다. 독도 문제에 관한 한 한일 관계에는 공식이 있었다. 영유권 주장, 교과서 채택 등을 앞세운 일본이 항상 선공이었다. 우리는 ‘무대응이 상책’ ‘조용한 외교’라며 수비로 일관했다. 모처럼 뽑아들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칼마저 ‘내부용’으로 끝났다. 아마도 우리의 선제공격이 일본을 뒤집은 예는 처음이 아닐까 싶다.
좋든 싫든 밀릴 수 없는 외교전이 시작됐다. 더구나 이성 잃은 일본의 모습에서 우리가 몰랐던 검은 속이 드러나고 있다. 단순히 건드려 보자는 눈빛이 아니다. 정말로 자기네 땅이라고 굳게 믿는 광기가 번득인다. 자기네 땅이 한국에 침범당했다는 거대한 집단 히스테리가 열도를 뒤덮고 있다. 한국이 그토록 지켜왔던 ‘조용한 독도 외교’. 그 50년의 어느 순간부터 일본은 독도를 다케시마로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외교전이 쉽지만은 않아 보이는 이유다.
답답한 건 이런 상황에서도 일본을 위해 뛰는 ‘독도 X맨’들이 있다는 거다.
대한축구협회장은 아예 정신 줄을 놓은 모양이다. 축구 대표 박종우 선수의 동메달 문제는 IOC 관할이다. 설명을 해도 IOC에 해야 하고 유감을 표명해도 IOC에 해야 했다. 그런데도 뚱딴지처럼 일본의 바짓자락을 붙잡고 늘어졌다. 일본 언론이 ‘사죄편지가 왔다’며 대서특필했고 한국인들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이런 짓을 저질러 놓고 겨우 한다는 게 Regret(유감)냐 Apologize(사죄)냐의 단어 풀이다.
정신 못 차린 ‘독도 X맨’들
총리를 지냈다는 인사의 말도 그렇다.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레임덕 회복을 위한 전략인 듯하다.” 하필 발언 장소가 미국 한복판이다. 국무부에서 미국 대변인과 일본 기자들 사이에 ‘독도 충돌’이 있었던 바로 그 날이다. 역겨운 애국심에 사로잡힌 일본 기자들이 독도문제를 물고 늘어졌고 참다못한 빅토리아 대변인이 “이제 끝내자”며 짜증을 내고 퇴장했다. 하필 그날, 하필 그 땅에서 대한민국 총리 출신 인사가 ‘독도를 간 우리 대통령이 문제’라는 투의 촌평을 냈다.
무슨 생각들을 하는지 모르겠다.
독도는 영토의 문제다. 영토는 국가 존립의 근거다. 국가의 수반이 그 나라 영토에 들른 일이다. 임기를 트집 잡힐 일이 아니고 날짜를 추궁당할 일이 아니다. 공연히 벌집을 건드린 게 아니라 우리가 몰랐던 거대한 벌집의 실체를 확인한 일이다. ‘축구 한일전’보다 몇 천 배 중요한 ‘독도 한일전’ 아닌가. 대통령에게 자신감-혹시 정치적 이득을 왕창 챙겨 가더라도-을 줘야 하고, 국민에게 애국심-하도 오랜 세월 말하지 않아 입술까지 거북스럽지만-을 얘기해야 할 때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일본은 정말로 그네들 땅이라 믿고 있었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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