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왕따·기합 없는 ‘3無 향토순례’ 애향심 넘치는 ‘남양주스타일’로 변신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초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들은 고민한다. 방학시즌이 되면 아이들에게 뭔가 특별한 경험을 선물해주고 싶어 기본적으로 영어캠프다, 경제캠프다, 심지어 다이어트캠프까지 알아본다. 아예 해외로 보내 야구, 골프 등을 지도 받으며 영어를 배우는 스포츠캠프를 보내는 부자엄마도 있고, 진로탐색이나 인성교육을 위해 국내 청학동 예절, 해병대 캠프 등을 찾는 엄마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과 충분한 상의없이 일단 가격이 비싸고, 멀리 떠나면 좋은 프로그램일 것이라는 맹목적인 믿음은 자칫 우리 아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악몽을 가져다 줄 수 있다.
그런데 남양주시에 가면 휴대폰·왕따·기합이 없는 ‘3無 향토순례’가 있다. 남양주문화원 ‘향토순례단’은 역사와 퀴즈, 그리고 전래놀이가 합쳐진 ‘내고장 역사와 문화 바로알기’ 프로젝트라로 1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지역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인기를 듬뿍 받고 있다.
남양주 지역 초등학교 4~6학년 100명으로 구성된 제15기 향토순례단이 지난 8월 13일부터 15일까지 2박3일간의 대장정을 무사히 마쳤다.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완주에 성공한 향토순례단의 2박3일을 따라 가봤다.
지난 13일, 남양주시 삼패한강시민공원에서 제15기 남양주향토순례단이 발대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2박3일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설레임으로 가득찬 100명의 아이들 표정과 달리 엄마, 아빠들의 표정은 불안해 보였다.
“아들, 밥 잘 먹고 아프면 전화해”, “더운데 잘 해낼 수 있지?”
부모 입장에선 응석받이로 자란 데다 힘든 일이라곤 겪어보지 못한 아이들이 무더위에 완주할 수 있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발대식 후 향토순례단의 강행군이 시작됐다. 땀이 비오듯하는 살인적인 8월 무더위에 단원들은 도보행군을 시작한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더워 죽겠어요”, “더이상 못 걷겠는데”…. 여기저기서 한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꾀병부리며 엄살 떠는 단원도 있었다. 그 가운데도 남자단원은 두 개의 배낭을 들기도 했고 체력적으로 힘든 여자단원들을 위해 손에 쥔 손수건을 끌어주기도 했다.
향토순례단원들의 최종 목표는 단순하게 ‘걷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장의 역사 유적지나 명소를 직접 찾아가면서 그 숨은 뒷 이야기를 듣고 내 고장에 대한 애향심을 키워보고자 걷는 것.
삼패한강시민공원에서 12km를 걸어 도착한 첫번째 목적지는 ‘조선 실학의 집대성자’ 다산 정약용 선생 생가와 실학박물관이 있는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올해는 다산 정약용 선생 탄생 250주년을 맞는 아주 특별한 해로 시대를 앞서간 대학자이자, 개혁가로 정치·경제·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긴 세계적인 인물이 남양주시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에 단원들은 다들 놀라워했다.
이튿날 14일, 단원들은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왕조 500년 역사’ 여행이 가능한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이었던 26대 고종(1852~1919)과 27대 순종(1874~1926)이 모셔진 홍릉과 유릉에 도착했다. 해설사로부터 듣는 재미있는 역사이야기는 귀에 쏙쏙 들어왔다. 특히 1895년 10월 일본 자객들에게 암살된 뒤 1919년 고종과 함께 현재의 금곡동 홍릉에 합장된 ‘비운의 국모’ 명성황후의 스토리를 듣고선 개구쟁이 녀석들도 순간 숙연해졌다.
이와 함께 단원들은 남양주시 명소로 꼽히는 남양주역사박물관, 유기농박물관을 차례대로 답사하면서 우리 동네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지역의 역사와 문화, 환경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비록 몸은 고될지라도 아이들의 표정에서 내 고장을 알아간다는 사실이 새로운 활력소로 작용한 것만은 분명했다.
무엇보다 단원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은 명소는 바로 화도읍 금남리에 위치한 ‘피아노폭포’. 하수처리수를 재이용해서 만든 91.7m 높이의 세계 최대 규모의 인공폭포인 ‘피아노 폭포’를 보고선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인공폭포와 함께 대형 그랜드피아노 모양의 화장실을 직접 사용하면서 신기해 하기도 했다.
‘하수처리장에 웬 피아노?’라며 연신 의아해하던 이윤환군(심석초5)은 “신기한 피아노 화장실을 이용해 보고 맑은 물의 소중함을 알게 됐으며 누구나 들러보고 싶은 관광자원이 우리 고장에 있다는 게 대단히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단원들은 쉴 틈 없이 이어지는 강행군에 지칠법도 한데 현장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지역 곳곳을 누비는 즐거움에 힘든 줄도 모르겠단다. 고된 하루 일정을 마치고 서경청소년수련원에 마련된 숙소에 도착한 단원들의 표정에는 지친 기색은커녕 오히려 에너지가 넘쳐 나고 있었다.
향토순례단은 밤마다 수상한 일을 벌이고 있었다. 첫날 밤엔 팀별로 남양주시를 홍보하는 관광포스터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고, 둘째날 밤엔 ‘도전! 남양주골든벨’을 개최해 단원들의 그간 숨은 퀴즈실력을 뽐냈다. 영예의 1위를 차지한 김한별군(덕소초교4)은 “‘나의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님과 같은 역사학자가 되는 게 꿈이라 평소 역사책을 많이 읽고 특히 가족들과 남양주시의 주요 유적지 다녀본 경험이 퀴즈를 잘 풀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며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마지막 날에는 전래놀이 ‘색동저고리팀’과 함께 투호놀이, 굴렁쇠 굴리기 등 전래놀이를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컴퓨터도 휴대폰도 없는 2박3일이었지만 단원들은 지루해 하지 않았다. 오로지 걷고, 달리고, 넘어지고, 잡고, 춤추며 신나게 몸으로 놀았다.
그런데 단원들을 늘상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수상한(?) 사람들이 있었다. 행군할 때 힘들어하는 단원들을 이끌어주고, 밥 먹을 때 반찬 챙겨주고, 신나게 놀아주고, 잠도 같이 자고 그야말로 엄마처럼, 선생님처럼, 친구처럼 ‘1인3역’을 담당한 이들은 누구일까.
바로 단원 100명의 파트너를 자처하며 2박3일을 동행한 ‘남양주시 대학생 플래너즈’ 멤버들이었다.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대학생인만큼 향토순례단의 안전에 대한 걱정은 붙들어매도 좋다.
‘남양주시 대학생 플래너즈’ 단장을 맡고 있는 함승영씨(20·한국재활복지대학)는 “아르바이트하랴, 스펙관리에 취업준비하랴 다들 바쁜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 지역의 어린 동생들을 위해 작은 도움이나마 주고자 25명이 참여하게 됐다”며 “어머님들께서 지역 대학생들이 자원봉사 한다고 하니깐 믿고 맡기셔서 특히 안전에 유의해 행사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쌍둥이자매 방찬·방송(별내초교4)을 참여시킨 학부모 이유경씨는 “최근 국토순례 성추행 사건을 발생해 딸 가진 부모입장에서 걱정이 많이 됐는데 남양주시에 거주하는 대학생 언니, 오빠들과 함께 참여한다고 해서 믿고 보냈다”며 “알찬 프로그램과 믿을 만한 인력풀이 향토순례단의 최고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8월 15일 오후 서경청소년수련관에서 해단식을 갖고 2박3일의 대장정을 마무리한 100명의 향토순례단원들은 남양주시의 다양한 문화재와 관광자원, 자연환경을 답사하고 체험하는 과정을 통해 인내력과 애향심으로 똘똘뭉친 ‘남양주스타일’의 어린이로 변신해 있었다.
3일 만에 엄마 품에 안긴 김세민(장현초4)양은 “힘들줄만 알았는데 밥도 맛있었고,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지역 곳곳을 누비다 보니 남양주 어린이로서 자부심이 생겼다”며 “하룻밤만 더 자고 갔으면 좋겠다”고 미소지었다.
이용복 남양주문화원장은 “올해 향토순례단이 탈 없이, 낙오자 없이 모든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열정과 사랑으로 뭉친 대학생 플래너즈의 역할이 컸다”며 “남양주시의 훌륭한 지역성과 알찬 정보를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는 친구같은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문화원이 다양한 노력을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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