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어주는 남자]선무 ‘선을 넘어’

선을 넘는다는 것, 경계를 넘는다는 것, 이쪽이 저쪽과 만난다는 것들이 요즘 화제다. 여권의 대통령 후보는 연일 대통합과 소통을 강조하며 다른 쪽 사람들을 만나고 다닌다. 이쪽이 아니니 저쪽은 다른 편이었거나 자신의 정체성과 다소 거리가 있는 사람들일게다.

우리에게 가장 강력한 선의 의미는 아마도 3·8선이 아닐까 한다. 1945년 8월15일 해방과 함께 찾아 온 이데올로기의 선긋기는 6·25전쟁을 불렀고, 현재 남북분단의 아픈 상징이 되었다. 선의 충돌과 불꽃은 한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었던 것이다.

전 노무현 대통령은 판문점을 통해 북한을 방문할 때 노란 선을 넘는 퍼포먼스를 했다. 나는 지금도 대통령의 발이 선을 넘는 순간을 기억한다. 화면 가득히 클로즈 업 된 그 순간의 장면은 그저 단순한 선 넘기가 아니었다. 분단의 비극을 뛰어 넘기 위한 대통령의 의지가 돋보이는 장면이기도 했고, 그 순간만큼은 통일의 희망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 되기도 했다.

탈북 미술가 선무는 이 선의 의미를 가슴에 품었다. 선을 뛰어 넘는다는 것, 경계가 사라진다는 것, 선이 철거된다는 것, 그래서 완전히 선의 흔적조차 없이 된다는 것을 상상했다. ‘선무(線無)’ 즉 선의 없음은 곧 그에겐 통일을 상징했다. 남한에 들어와 미술가로 살기 시작하면서 그는 선무라는 이름을 지었다.

그의 작품 ‘선을 넘어’는 두 개의 의미를 생각게 한다. 우선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그가 두만강을 건너 남한에 오기까지 숱한 선을 넘어야 했던 참혹한 현실의 선이 있다. 고향집을 떠나는 순간부터 그는 수없이 많은 선들을 넘어야 했다. 물론 북한에서 중국으로 밀입국하기 위해 건너야 했던 강이라는 선이 최고의 순간이었겠으나 또한 그 순간은 죽음과 맞닥뜨려야 했던 순간이기도 했을 것이다.

두 번째는 남한에서 살면서 삶의 미술을 창작하면서 겪어야 하는 선들이다.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세계에서 남한의 모습은 하루하루가 그에겐 선이나 다름없을 터. 보수우파니 진보좌파니 하는 색깔론과 친일 친미라 엮어서 비판하는 다른 시선들도 있고. 다종다양한 자율적 세계의 남한은 사실 분단의 냉전 상황을 필연적으로 안고 살아가는 불덩이가 아니던가!

선을 넘어야 한다. 선을 지우고 서로를 열어서 다시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통일로 가는 첫 희망의 무지개가 피어 오를 것이다.

 

김종길 미술평론가·경기도미술관 교육팀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