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춤 대가' 이동안선생의 정신 이어가는 실버 춤동아리
“넌 어려서 대충해도 이뻐!”
옆에서 듣고 있던 김숙이 과장(화성문화원)은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분장실은 항상 분주하다. 오늘이 가장 이쁜 모습이길 기대하면서 최선을 다해 집중한다. 눈썹에, 입술에, 볼에, 옷 맵시에, 버선코의 날렵한 선 하나하나에까지. 그러나 지나가는 세월은 어제보다 오늘 더 흔적을 남겨 놓는 법이다. 그래서 젊어서 좋겠다는 시샘 아닌 시샘을 툭! 던져 본다. 60세에서 75세로 이뤄진 ‘화성 춤 클럽’. 화성문화원(원장 우호철) 동아리로 자리잡은 이들이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은 2009년부터다. 부채춤, 장고춤, 태평무, 진도북춤 등 여러 형태의 한국춤을 배웠고 특히 운학 이동안 선생의 춤을 함께 배우면서 춤의 깊은 맛을 조금씩 느끼고 있는 중이다.
■ 한국춤의 대가 운학 이동안 선생의 춤
이동안 선생의 춤을 배우는 데에는 화성만이 갖는 특별함이 있다. 이동안 선생은 화성시 향남면 송곡리 113번지에서 태어난, 한국춤의 대가로서 예인이었던 6대조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화성 재인청의 도대방을 지낸 분이다. 재인청은 화성에 만들어진 가·무·악(歌舞樂)을 관장하는 기관으로 6대조 할아버지가 처음 도대방을 지냈고, 이동안 선생이 일제의 문화말살정책으로 1922년 강제 폐쇄될 때까지 도방을 맡았으니 마지막 도대방이 된 셈이다.
화성 재인청은 전국의 예인들을 통솔 관할했던 기관으로 전국에 각 지부를 두어 예인을 양성했던 곳이다. 이곳의 인정을 받아야 관아에 들어가 공연에 참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동안 선생은 본인 대에서 끊어진 재인청을 복원하고 싶어했다. 우리 전통문화가 올바로 전승되기를 바라며 1995년 89세로 타계할 때까지 무대에서 왕성한 활동과 지도에 몰두하셨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서양문화의 유입으로 전래적인 춤과 외래적인 춤이 섞인 신무용이 학교교육을 통해 확산되면서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 온 춤보다 지나치게 빠르고 기교위주로 흘러왔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선생이 춤사위를 지도하면서 하신 말씀에서 한국 춤의 진중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이동안 선생의 춤은 기초수련무, 기본무, 살풀이, 승무, 태평무 등 30여 가지가 넘는데, 화성 춤 클럽은 현재 기본무, 신칼대신무, 진쇠무, 살풀이를 배우고 있고 기본무와 신칼대신무는 공연할 정도가 된다고 한다. 어르신들에게 춤을 가르치고 있는 김정아 한국무용협회 화성지부장은 화성 지역이 아닌 다른 곳에서 떠돌아다니고 있는 이동안 선생의 춤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고 우선 화성에 사는 지역민들이 배워야겠다는 생각에서 공부하고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춤은 정신적인 것이잖아요. 내면적인 것의 표현이 춤이고요. 단순히 행사나 축제에 한 번 나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춤 속에 흐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정신을 배워야하는 거지요”
그리고 성급하지 않게 한발씩 나아가겠다는 다짐을 덧붙인다.
2011년 정식으로 ‘화성 춤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본격 춤동아리를 출범시키면서, 배움을 나눔으로 환원하는 지역 활동 또한 소중한 역할로 삼고 있다. 2011년 진행했던 프로그램 ‘화성춤 나빌레라~ 화성인은 화성춤을 추고’는 운학 이동안 선생의 전통을 배우고 이를 화성지역에서 나눔 활동으로 실천했던 과정이었다. 마도면, 정남면, 봉담읍, 우정읍 등 10여 차례 지역 나눔활동과 문화원연합회 경기도지회 합동연수, 화성시 향토박물관 개관식, 수원문화원 여름음악축제 등 5차례에 걸친 초청공연 그리고 수원 화성주부국악제 전국대회에서 특별상 수상과 여성학습동아리 발표회에서 희망여성상을 수상하는 등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폭넓은 활동을 펼쳐왔다.
우연히 알게되어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화성 춤 클럽 정춘선 회장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 진행되는 화성문화원(남기태 국장)의 지원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지역 나눔활동이 춤을 배우는데 큰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배움을 넘어 행복함을 얻을 수 있는 순간을 나눔을 통해서 얻기 때문이다. 그래서 늦게 배운 춤이지만 지금이라도 배울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현재 5년째 춤을 배우고 있는 정춘선 회장은 이동안 선생의 춤을 배우면서 깊은 춤의 맛을 조금 알게된 것 같다고 했다.
“그동안 이쁜 춤을 많이 배웠지. 기분이 좋았지. 그런데 이동안 선생 춤을 배우면서, 내가 춤에 대해 알아가는 단계일까? 춤의 절제와 가라앉는 마음, 정신이 차분해지는…. 그런 가슴에 와 닿는 것이 있어요. 호흡에 대해 알아가는 것일까…. 지금 나이 육십이니 앞으로 이십 년 더 춤 배우면 지금보다 더 잘 출 수 있겠지.”
‘나는 누구였다’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시키려는 움직임의 주체로 ‘나’를 만나고자 하는 것, 춤을 배우는 자로서, 배운 춤을 나누는 자로서, 춤을 잘 추는 춤꾼으로서 계속되는 또 다른 나를 만들어나가는 ‘춤추기’ 속에서 생활을 즐기는 어르신들의 역동성이 느껴진다. 처음 춤을 배울 때 동네에 나가 춤을 추고 그들도 나도 즐거운 순간이 될 것임을 알고 시작한 것은 아닐 것이다. 무언가 시작했다는 행위 자체에서 나오는 또 다른 생성의 힘이라고 본다. 나도 모르게 되어가고 있는 그것. 지금의 나를 나도 모르게 벗어나고 있을 때 올라오는 생명력이다.
‘화성 춤 클럽’은 ‘화성 춤 보존회’의 비전을 갖고 있다. 운학 이동안 선생이라는 훌륭한 한국 춤 대가를 갖고 있는 화성에서 꿈꿔봄직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 꿈의 시작이 평균연령 65세의 춤 모임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생긴 또 하나의 꿈이 있다. 이동안 선생의 춤을 배우는 청소년들의 춤 모임이 그것이다. 화성시에 있는 학교와 연계해서 어르신들을 멘토로 한 춤배우기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싶은 것이 화성문화원 김숙이 과장의 바람이다. 춤 클럽을 만들어질 때부터 함께 해온 김숙이 과장은 어르신들이 갖고 있는 가능성을 본다. 매번 분장실에서 젊고 이쁜 것들(?)에 대한 시샘어린 불평을 들으면서 슬며시 웃지만, 어린애 같은 투덜거림 속에서 세월이 갖는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느낀다. 그리고 아름답다고 느낀다.
자유기고가 김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