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결말이 싱겁다. 금방 끝났다. 올 수시전형 모집에 쓸 학생부 기재 마감일(8월 31일)까지 99개 학교가 기재를 마쳤다. 교과부가 나머지 7개교에 대해 ‘3일까지 기재하지 않으면 교장 교감 해당 교사를 징계하겠다’는 공문을 발송했다. 여기서 6개 고교가 추가로 기재했다. 대상학교 106개교 가운데 교육부 입장을 따른 학교는 105개교다. 용인의 A고교 한 곳만 교육청의 입장을 지지하며 학생부 기재를 거부했다.
잠자코 있을 경기도 교육청이 아니다. “교과부가 감사 등 강압으로 학교현장에서 학생 교육에 매진하고 있는 교육자의 자부심과 자존감을 짓밟고 있다”라며 교육부를 맹비난했다. 105명의 교장들이 교과부 협박 때문에 기재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교장 105명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학생의 인권을 짓밟는 일을 했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A고교 교장 한 사람만 ‘불이익에 맞서 학생인권을 지켜낸 구세주’가 됐다. 교장 105명의 명예를 노골적으로 깎아내리는 논리다.
학생부 기재 교장을 비겁자 취급
한번 보자. 문제 된 106개교 학생 폭력의 내용은 누구도 본적 없다. 누가 누굴 때렸는지, 어떤 학생의 어디가 부러졌는지, 빼앗긴 돈은 또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모른다. 교과부 책상 속과 교육청 서랍 속에만 있다. ‘A시 B학교 C군’이라는 표기법을 쓰면 인권을 다치지 않아도 될 일인데도 안 보여주고 있다. 혹 폭력 내용을 여론에 그대로 드러내면 불리해지는 쪽이라도 있는 걸까. 이런 상태를 덮어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니 이것도 참 코미디다. 공소사실은 밀봉해놓고 유죈지 무죈지 적어 내라는 격이다.
이런 깜깜이 속에서 모든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106명의 교감선생, 교장선생이다. 이들은 모든 걸 알고 있다. 코피로 범벅된 교복이 있었다면 그 현장을 봤을 거고, 학부모가 쫓아왔다면 그 봉변을 몸소 겪었을 거다. 어쩌면 지금도 ‘처벌하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피해자 측 닦달에 시달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교장 교감 105명이 학생부 기재를 결정했다. 아무려면 별것도 아닌 내용을 교과부 협박때문에 기재했겠나. 이야말로 교육자의 자존감을 뭉개는 소리다.
어디에 보니-9월 3일자 모 언론- ‘일본도 학생부 기재를 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교과부에 반박하는 예로 들었던데, 역시나 어불성설이다.
‘애들 맞아 죽게 놔 두자는 얘기?’
바로 며칠 전-8월 16일- 일본 시가(滋賀)현 오쓰(大津)시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시 교육위원회 교육장실에서 시와무라 겐지(澤村憲次·65) 교육장이 한 대학생(19·남)이 휘두른 망치에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오쓰시에서는 지난해 10월 중학생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숨진 학생이 친구들로부터 이지메를 당한 정황이 분명했지만 교육 당국은 ‘자살과 이지메의 인과관계는 판단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그 대학생은 ‘교육 당국의 진실 은폐에 분노해서 테러를 했다’고 밝혔다. 이게 일본의 교육 현실이다. 뭘 배울 게 있다고 ‘일본도 안 하니 우리도 하면 안 된다’며 근거로 삼나.
지금도 매 맞는 아이는 있고 돈 빼앗기는 아이는 있다.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아이도 있고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아이도 있다. 집단으로 몰려가 성폭행하는 아이가 있고 그걸 숨기고 명문대에 입학하는 아이가 있다. 이런 현장에서 ‘정도가 심한 폭력’만이라도 기록에 남겨 다른 폭력을 경계 삼자는 얘기다. 이게 왜 공무원 수백명이 밤을 새우며 전의를 불태울 일이고, 교육부 장관 물러나라며 탄핵할 일이며, 교장 105명을 ‘인권과 자리를 맞바꾼 비겁자’로 만들 일인가.
무상급식 논란 때 반대론자들을 향해 이렇게들 말했다. “그러면 애들을 굶기자는 얘기냐.” 그 어법을 학교 폭력 학생부 기재 반대론자들에게 적용하면 이렇다. “그러면 애들 맞아 죽도록 놔두자는 얘기냐.” 논리비약이라고 뭐라 할거 없다. 지금 이 말이 틀렸다면 그때 그 말도 틀린 것이고, 그때 그 말이 맞았다면 지금 이 말도 맞는 것이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비겁한 교장 105명, 위대한 교장 1명-왜? ]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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