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하는 에듀 클래스] <11> 창문아트센터 ‘소풍가는 날-우리동네 락! 락! 락!’

고사리손으로 '재미있는 우리동네 이야기' 담아내요

10여년 이상 폐교를 문화예술과 농촌체험 공간으로 활용하면서 널리 알려진 ‘창문아트센터’. 이곳에서 또 하나의 의미있는 프로그램이 진행중이다. 어린 초등학생들이 잊혀져가는 마을의 현대사를 발품 팔며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고사리손에서 전문가들의 그럴싸한 조사연구 결과물을 기대할 순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진한 감동을 안길 기록물이 탄생할 것으로 주목된다.

▲ 폐교에서도 수업은 진행중

지난 2001년 5월 문을 연 창문아트센터(관장 박석윤·화성시 수화동 소재)는 7명의 미술 부문 작가가 상주하면서 작품활동을 하는 한편, 문화예술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인지도를 높였다. 이 곳은 폐교를 교육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화성시 수화동은 한때 바다 짠 내 맡으며 고기잡는 사람과 그들의 가족들로 붐볐던 어촌이었다. 바다를 막아버린 인공호수 시화호 개발로 마을사람들은 떠났고 학교는 문을 닫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학교에서 창문아트센터가 자리잡으면서 다시금 활기가 넘치고 있다.

평일이면 인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무리지어 방문한 병아리들이 다양한 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체험하며 종일 뛰어다니고, 주말이면 가족 단위 학생들이 역시 다채로운 프로그램 참여에 시끌벅적하다.

지난 16일 일요일 오후에 찾은 창문아트센터는 어김없이 운동장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는 장난꾸러기 초등학생과 나무그늘에 모여 앉아 수다를 떠는 학부모들로 북적였다. 

그 가운데 자못 진지함이 돋보이는 여섯명의 아이들이 교실의 한 책상에 둘러앉아 박석윤 관장의 설명에 귀기울이고 있다.

창문아트센터의 지역특성화문화예술교육 ‘소풍가는 날-우리동네 락! 락! 락!’의 참여학생들이다.

막내인 김소연(9)양부터 맏언니인 박경희(13)양까지 참여자 9명은 모두 창문아트센터 인근 3개 마을에 산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은 일요일이면 ‘소풍가는 날’에 참여하기 위해 선생님이 직접 운전하는 한 셔틀버스로 창문아트센터에 온다.

“폐교 상태에서 인근 마을 아이들을 학생으로 모으기가 여간 어렵지 않아요. 자전거로 와도 덤프트럭이 너무 많아 위험하기 때문에 선생님이 매번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하죠. 게다가 요 녀석들이 한 마을의 아이가 ‘가지말자’고 선동하면 우르르 빠져버리기도 일쑤여서...”

박 관장의 우려대로 이날 신외리 마을의 3명이 모두 결석했다. ‘전날 마을축제가 열렸는데 그곳에서 신나게 논 녀석들이 지쳐 안오나보다’라며 아쉬움을 애써 달래는 분위기다. 한 사람, 한 번이라도 빠지면 프로그램의 의미와 취지가 퇴색되기에 안타까움이 더 큰 듯하다.

그래도 옹기종기 모인 여섯 명의 아이들은 집중한다. 그렇게 수업은 시작됐다.

▲ 고사리손으로 기록한 내 고장 내 마을

“자유주제로 해요! 주제 정하면 어려워요!... 저는 우리 마을에 있던 공룡 그릴래요...아니, 태극기 그릴께요. 선생님 이 태극기 좀 잡아주세요.”

장난기 가득한 강준교(초4년)군은 이날 진행된 판화 원리 배우기의 소재를 정하느라 분주하다. 교실 한 켠에 놓이 태극기를 선생님에게 펼쳐 보여달라고 맡기고서야 판화 제작에 몰입한다.

이 교육프로그램은 경기문화재단과 화성시의 예산을 지원받아 지난 4월부터 오는 12월까지 약 8개월 일정으로 진행중이다.

이날 수업은 판화 원리 배우기, 마을별 전설을 기록하는 그림북만들기, 핫케이만들기 순으로 진행됐다.

앞서 5개월여간 수화리, 장전동, 신외리 등 인근 마을을 직접 탐사했다. 참여 학생들은 마을 어르신을 통해 옛 이야기를 듣고 그림과 글로 기록하는 한편 자신들이 원하는 마을의 미래 지도를 그리기도 했다.

즉, 이 교육을 한 줄로 정리하자면 ‘아홉명의 어린 초등학생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마을로 떠난 여행기’다.

창문아트센터 인근 마을은 바다와 갯벌을 삶의 기반으로 살았던 이들이 외지로 이주하고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학교가 문을 닫는 등 외형적 변화와 함께 마을중심의 공동체의식과 전통문화 상실 등의 내적 변화를 함께 겪고 있다.

1년 전 미꾸라지와 우렁을 잡았던 논과 밭 대신 4차선 도로가 들어섰고, 어르신들이 초등학교 6년 내내 소풍 다녔던 봉선대 바위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던 당산나무는 그네들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게 됐다.

이에 ‘소풍가는 날’의 아홉명 아이들은 매주 일요일 사라져가는 마을을 기록해 온것이다.

이와 관련 최은심 선생님은 “아이들이 마을 곳곳을 돌며 동네 어르신들을 만나 마을 지명과 전설 등 옛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모습으로 변화했다”며 “예산만 더 지원된다면 앞으로 경기도미술관이나 과천국립현대미술관처럼 마을을 벗어나 좀 더 큰 문화예술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직접 듣고 보는 것만큼이나 더 실효를 얻을 수 있는 교육은 없기 때문이란다. 자신의 의견은 쉽게 입 밖으로 꺼내지 않던 소극적인 아이들이 최근 원하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고.

“얼마전 신외리의 미래 마을 지도를 모형화하면서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넣기로 했어요. 도서관, 공연장, 어르신들을 위한 게이트볼장까지 만들었죠. 마지막에 아이들이 모두 한 가지만 더 넣자고 하는데, 그게 뭔지 아세요? 바로 패스트푸드 가게에요.(웃음)”

아이들은 그간 스쿨버스를 타고 지나쳤던 마을 곳곳을 직접 밟아보고 마을 어르신들을 마치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스스럼없이 대화하기에 이르렀다. 사라진 바다의 흔적을 보듬고 자신이 태어나기 훨씬 오래전에 존재했던 공룡화석을 확인한다.

그렇게 매주 한 번씩 ‘소풍가는 날’을 통해 얻은 결과물은 그림책과 지도 등으로 탄생한다. 그보다 더 값진 것은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머리와 가슴에 새긴 마을이 아닐까. 더 이상 외롭고 썰렁해 벗어나고만 싶은 시골이 아니라,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겨진 ‘내가 사는 곳’ 말이다.

류설아기자rsa11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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