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산바의 영향이 무섭다. 비는 물론이요 큰 바람의 위력이 대단하다. 가을의 결실을 준비하는 농부들의 속이 타고, 도시를 걷는 사람들도 가로수와 전봇대, 간판이 날려서 애가 탄다. 가을 태풍은 유래가 없고 있었다 해도 이렇게 큰 날벼락을 동반하지 않았다.
20세기 한국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늘 ‘빨리빨리’, ‘바꿔바꿔’, ‘앞으로앞으로’, ‘최초최고’, ‘반공방첩(反共防諜)’의 구호를 부르짖으며 살았다. 그래서 우리 현실은 바뀌지 않은 것들이 없는 것들로 채워졌다. 새 것은 진리였거나 우아하고 행복한 무엇이었고, 헌 것은 버려야 할 무엇이었다.
큰 바람이 불 때 마다 느끼는 것은 이런 현실이 언제 어떻게 날아가 버릴지 모른다는 공포감이었을 것이다. 김상돈 작가는 이런 한국적 현실에 대해 농담을 걸 듯 농쳐왔다.
사실, 무겁고 우울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들은 해학과 키치가 만연하다. 어떤 작품들은 익살스럽기까지 하다. 2010년에 선보인 일련의 ‘불광동 토템’ 연작은 씻김이나 신명, 흥의 멋을 그 시대의 현실에서 구현했던 1980년대 민중미술의 미학을 은연 중에 차연(差延)한 작품이다.
김상돈의 유머는 우리 앞에 직립해 있는 작품의 실체가 아니라 그 실체의 이면에 똬리를 틀고 앉아서 이 세계와 저 현실을 샤먼의 시선으로 꿰뚫고, 꿰뚫어서 터진 구멍으로 깔깔거리는 공수의 언어를 퍼 붓는 천연덕스런 풍자에 있다.
사진으로 기록한 ‘불광동 토템’의 연작들이 화이트 큐브에 걸려서 성스럽게, 그럴싸하게, 우아하게, 화려하게, 품위 있게, 품격 있게 보이는 순간 토템의 우상은 마치 마당 판의 광대처럼 “빵꾸 똥꾸야~”를 외치며 화들짝 웃어젖힐 듯싶다.
속칭 ‘영빨의 후카시’로 단단히 어깨를 치장한 토템들은 시각적 현란함만큼이나 키치적이며 해학적이다. 싸구려 플라스틱 의자에 가짜 꽃과 가짜 마늘, 가짜 포도, 가짜 잡풀, 가짜 과일 등으로 ‘진짜처럼’ 분식한 이 ‘옥좌형(玉座形) 토템’은 부재와 상실과 허구는 물론이고, 허술하면서도 그럴싸한 광택을 뿜어내는 헛된 자본주의의 욕망을 빗대고 있지 아니한가.
천민자본주의의 그늘에 빌붙어서 영생과 해탈을 꿈꾸는 사이비 교주의 황홀한 쪽방 궁전에 처박힌 보좌(寶座)가 있다면 딱 저것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 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부유한 판타지의 현실을 기웃거리고 있을 따름이다. 큰 바람 앞에서 당당해지기 위해 헛된 욕망을 버려야 할지 모른다.
김종길 미술평론가·경기도미술관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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