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시와 마산시가 통합되면서 마산은 일개 구로 작아졌으나 구(舊)마산시의 옛 중심지는 예술도시로 성장 중이다. 창동 예술촌이 들어서더니 지금 마산의 창동은 주말이면 3천명의 시민이 찾는 예술의 중심지가 되었다.
대전광역시 대흥동 일대에서 지금 펼쳐지고 있는 원도심프로젝트의 ‘원도심’은 낡은 도시이거나 묵은 도시, 쇠락한 도시, 텅 빈 도시, 역사도시의 시간축적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6·25 한국전쟁 이후 재편성되듯 폐허 위에 구축된 대전역 앞의 원도심은 1960~70년대 도시화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1980년대까지 이 일대는 도시의 중심이 되었으나 1990년대로 넘어오면서 주변부가 되었다. 시간의 축적은 그즈음 멈췄을 것이다.
구헌주의 ‘빈티지룩’은 대흥동의 시간성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그는 원도심이 되어버린 이 공간의 흔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포지티브와 네거티브의 개념을 바꾸어 차용했다. ‘빈티지’는 앞서 언급했듯이 ‘묵은, 쇠락한, 텅 빈, 역사’의 시간 축적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옛 건물들의 표면에 고스란하다. 그러므로 그는 옷의 이미지를 그리되, 옷의 배경을 밝게 포지티브로 도드라지게 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옷의 시간성이 드러나는 전략을 구사했다. 즉, 낡은 도시를 드러내기 위한 ‘빈티지룩’의 전략은 옷의 바깥을 더 밝게 함으로써 쉽게 성취되었던 셈이다.
옷은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포지티브였으나 오히려 네거티브로 남아서 완성되었다. 밖을 단색조로 바꾸자 옷의 시간성은 시간이 축적한 만큼의 칼라를 선명하게 돌출시켰다. 그리고 그 옷의 칼라는 원도심 미학의 가장 아름다운 상태를 노정했다. 그라피티의 미학이 이렇듯 명쾌하게 리얼리티를 획득한 사건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구헌주의 ‘빈티지룩’은 리얼리즘의 전경(현상)과 후경(흔적)을 동시에 보여주는 탁월한 벽화라 할 것이다.
수원의 원도심도 대전의 대흥동과 다르지 않다. 화성의 옛 흔적을 찾아 복원하려는 장대한 계획이 나쁜 것은 아니나 낡은 것의 가치를 예술의 가치로 전환하는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행궁동의 골목들을 보면 예술의 가치를 찾는 것이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김종길 미술평론가·경기도미술관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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