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칼럼] 홀대마라! 세계화장실협회도 국제기구다

김종구 논설실장 kimjg@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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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CF(녹색기후기금) 유치를 위해 내 건 조건이 대단했다. 개도국 표심을 사려고 4천만 달러가 약속됐다. 각국 대표단 연수와 발전계획 수립 지원에 들어갈 돈이다. 사무국이 입주할 송도 아이타워 15개 층은 무상임대다. 대략 600만달러쯤 든다. 사무국 운영비도 매년 100만달러씩 주기로 했다. 이것도 700만달러다. 이사 오는 비용 200만달러까지 배려했다. 결국엔 GCF 유치에 5천700만달러(약 630억원)짜리 베팅을 한 셈이다.

그래도 경사스런 일이다. GCF는 회원국만 190여개국이다. 상주할 사무국 직원이 500여명이다. 기후와 날씨로 재편되는 향후 세계 경제의 컨트롤 타워다. 2020년까지 매년 조성될 기금만 1천억달러라고 한다. 경쟁국 독일의 베팅이 우리보다 컸던 이유를 알 것 같다. KDI(한국개발연구원)는 이번 유치로 3천800억원의 경제유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죽음의 도시’ 송도가 벌써부터 들썩대고 있다. 630억원 베팅할 만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맘 한 켠이 찜찜하다. 수원시 한구석에 ‘버려져 있는’-이렇게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WTA(세계 화장실 협회) 때문이다.

GCF유치에 630억 베팅

WTA도 국제기구다. 2007년 세계 66개국이 모여 창립했다. 의미도 상당하다. 인류의 관심을 ‘먹는 문화’에서 ‘싸는 문화’로 옮겨 간 최초의 기구다. WAO(유엔식량농업기구)가 올해 발표한 ‘제대로 먹지 못하는 인구’는 8억70만명이다. 이에 비해 WTA가 2007년 발표한 ‘제대로 싸지 못하는 인구’는 25억명이다. 화장실 없이 생활하며 각종 질병에 노출된 인류가 그렇게나 많다. 적어도 머릿수에 관한 한 식량기구보다 화장실 협회의 할 일이 더 많다는 얘기다.

산업, 즉 ‘돈’이라는 측면을 봐도 그렇다. 화장실·욕실 관련 산업은 말 그대로 블루오션이다. 변기, 비데, 화장지, 세척제, 타일, 환기장치… 끝이 없다. 이 모든 게 화장실 문화와 관련된 산업이다. 그 전망을 짐작케 하는 일이 있다. 중국이 2011년 하이난성(海南省)에서 세계 화장실 엑스포를 개최했다. 올해는 상하이(上海)에서 ‘주방·욕실 박람회’를 열었다. 세계 경제의 선도자 중국이 이처럼 화장실 산업에 혈안 되는 이유? 돈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WTA가 우리 주변에 파묻혀 있다. 행정안전부 예산도 끊긴 지 오래다. 경기도가 나서지도 않는다. 파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 2011년 1월, 전 직원이 퇴사했다. 겉으로는 구조조정을 얘기하지만 결국엔 돈이 없어서다. 지금도 사무실을 지키는 건 2명뿐이다. 창립 당시 약속됐던 국제연수, 학술대회, 국제협력사업, 글로벌 캠페인 등은 꿈도 못 꾸고 있다. 지금은 사무국이 있는 동네 주민들조차도 WTA가 무슨 건설회사냐고 물을 정도다.

왜 이 지경이 됐을까. 창립할 때만 해도 세계 화장실 문화를 선도하고, 경기도와 수원을 세계에 알리고, 한국을 화장실 산업의 메카로 만들어 줄 거라던 WTA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2008년 하반기였다.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바뀐 다음 해다. WTA 심재덕 회장의 전화가 왔다. “행안부가 약속했던 70억원 지원금이 없어진 것 같다. 국제기구와 정치가 무슨 상관이 있다고들 이러나.” 일 리 있는 호소였다. 다음날 경기도 한석규 기획조정실장에게 물었다. “세계화장실협회는 경기도 수원에 유치된 국제기구 아닌가. 도비라도 지원할 수는 없는 건가.” 한 실장의 답은 간단했다. “할 수도 있다. 단 심재덕 전 의원이 완전히 손을 떼야 한다.”

정치가 버려놓은 WTA

WTA가 왜 저 지경이 됐는지 상징적으로 설명해주는 추억이다. 그 후로 정부 지원금은 끊겼고, 직원들은 떠났고, 사업은 백지화됐다. 지금은 사무국 간판만 겨우 붙어 있다. 우리가 당당히 선포한 세계 화장실의 날(11월 22일)이 한 달 앞이다. 그런데 우리는 또 다른 국제기구 GCF만 얘기하고 있다.

글로벌 시대라 함은 글로벌 경쟁을 뜻한다. 세계에서 싸워야 하고, 국가를 경쟁 삼아야 한다. 네 실적, 내 실적을 따지면 안 된다. 노무현 표 WTA 따로 있고, 이명박 표 GCF 따로 있지 않다. 둘 다 어렵게 유치한 국제기구고, 한국을 먹여 살릴 미래 산업이다. GCF 유치에 쏟았던 열정의 10분의 1이라도 WTA에 쏟아야 한다. GCF 운영에 쏟아 부을 돈의 100분의 1이라도 WTA에 챙겨줘야 한다. ‘화장실의 모든 것’을 중국에 넘겨주기 싫으면 그렇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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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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