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으로 쫌 들어가요.” 안내양의 쉰 쇳소리가 아침을 가른다. 버스는 출발했지만 그의 몸은 절반이 밖에 있다. 양손으로 손잡이를 거머쥔 그가 비상수단을 쓴다. ‘배치기’로 손님 밀어 넣기다. 여성으로서의 수치심 따윈 버린 지 오래다. 때를 맞춰 운전기사도 ‘기술’을 발휘한다. 급정거와 급출발을 반복하며 손님들이 뒤섞인다. 이러기를 몇 번, 버스 안이 신기하게도 정리됐다. 3~4분을 간 다음 정거장에 도착할 때쯤엔 어느새 몇 사람 올라설 새로운 공간이 생긴다. 안내양의 절규와 여학생들의 비명, 아저씨 입에서 풍기는 어제 마셨음직한 술냄새까지….
기차 출입구에 사람들이 매달렸다. 보는 이까지 아슬아슬하다. 하지만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드는 여유까지 보인다. 기차 지붕 위의 모습은 더 아찔하다. 매 칸 수십 명씩이 올라앉았다. 기차가 출발하고 몇 분, 지붕 위 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숙인다. 어린 아이 머리만 한 콘크리트 덩어리 때문이다. 철도청이 지붕 위 승차를 막겠다며 곳곳에 매달아 놓은 장치다. 라펜디 드자민 인권노동단체 회장은 “지붕 승객은 공공 운송수단이 턱없이 부족하고 표 살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며 “안전한 철도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출근에 60분 걸리는 경기도민
뒤의 것은 2012년 인도네시아, 앞의 것은 1970년대의 대한민국이다. 인도네시아의 2011년 국민소득은 3천469달러다. 대한민국의 1971년 국민소득이 3천643달러. 공교롭게 두 시기의 소득 수준이 빼다 박은 듯 닮았다.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로 출근하던 그때의 대한민국은 ‘못 사는 나라’였다. 매달린 콘크리트 덩어리를 피해가며 기차 지붕에서 출근하는 지금의 인도네시아도 ‘못 사는 나라’다. 무리 없이 연결되는 결론이 있다. 국민의 출근 모습이 곧 그 나라의 경제력이다. 그래서 통근 복지·통학 복지(본보 2012년 6월 19일 ‘지지대’)라 썼던 거다.
한국인의 평균 통근 시간에 대한 보고서가 나왔다. 어제(30일) 발표된 한국교통연구원 이재훈 박사의 자료다. 여기 나온 한국인의 통근시간은 50분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비슷하다. 한심한 수준인데 그래도 이건 낫다. 경기도민만 떼어내 보니 60.5분까지 늘어난다. 그 이유를 묻는 질문에 적힌 답이 더 씁쓸하다. 59.5%가 ‘직장 가까운 곳에 집을 구하지 못해서’라고 적었다. 돈이 없으니 원하는 곳에 살지 못하고, 가까이 살지 못하니 60분씩 출퇴근에 시달리고, 그렇게 시달리다 보니 돈 버리고 시간 버리고 있다. 소득이 10배 늘어난 40년 동안 그대로 멈춰 선 대한민국 경기도민의 통근 현실이다.
GTX(수도권 광역 급행 철도) 얘기 하려고 이렇게 빙 돌아왔다. 사업이 답보상태인데 그 이유가 GTX의 경제성이란다. 타당성 조사가 1 이하로 나오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한마디로 웃기는 얘기다. OECD까지 나서 웰빙 지표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통근 시간이다. 토목이 아니라 복지의 문제다. ‘복지’ 얘기만 나오면 사족을 못 쓰는 대한민국이 왜 ‘통근 복지’에 대해서는 유독 주판알을 튕기나. 애들 급식비 내주기는 경제성이 있어서 시작한 건가. 시작 반년 만에 포기한 보육비 지원은 경제성이 있어서 시작했었나. 3만불 시대의 복지행정에 들이댄다는 기준이 꼭 3천불 시절의 토목행정이다.
MB정부, 의지 갖고 시작하길
그렇다고 GTX가 금과옥조라는 건 아니다. GTX보다 저렴한 해결책이 있으면 그걸로 해도 좋다. GTX보다 빠른 방안이 있으면 그렇게 해도 좋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게 없어 보인다. 거미줄처럼 엮여 버린 수도권 도로망이다. 더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땅 한 조각 보상에만 수억원이 들어간다. 1년 예산 몽땅 털어 넣어야 땅도 못 산다. 그래서 나온 게 땅속으로 기어들어가자는 거였다. 모두들 ‘그거 괜찮은 생각’이라며 박수까지 보냈다. 그래놓고 인제 와서 ‘남느니 밑지느니’를 따지고 있다. 대안을 내놓지도 못하면서 저러고들 있다.
끌만큼 끌었다. 이제 시작해야 한다. 의지의 문제 아니겠나. 설마하니 ‘3만달러짜리 이명박 정부’가 기차 늘릴 생각 대신 승객 머리통 부술 돌덩어리나 매달아 놓는 ‘3천 달러짜리 어떤 정부’처럼 가겠는가. MB 정부의 마지막 넉 달, GTX에도 마지막 넉 달이 될 수 있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GTX는 토목이 아니라 복지다]
김종구 논설실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