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 아트의 기적'을 향한 문화예술 나눔
고귀한 작품이 하얀 벽면에 우아하게 걸려있고 이를 조용히 바라보는 관람객만의 공간인듯한 미술관 한 켠에서 시끌벅적한 수다가 쏟아져 나온다.
심도있는 작품 비평이라도 벌어지는가 하고 귀기울여보니, 좋아하는 사람을 공개 발표하는 ‘짝짓기’가 한창이다.
이내 어딘가 불편한 몸과 산만한 표정을 감출 수 없는 두명의 지체장애인들이 대화하고 싶은 선생님 한 명과 손잡고 발을 뗀다. 10여명의 지체장애인과 5명의 문화예술인이 2대 1의 미팅을 위해 각각 다른 장소로 향하는 것이다.
경기문화재단 내 문화나눔센터가 문화바우처 기획사업으로 발굴 지원하는 에이블 아트 연극 ‘총체적 난극’의 연습장면 중 일부다.
이 연극은 경기도미술관의 김종길 교육팀장(큐레이터)과 김월식 커뮤니티 아티스트를 주축으로 구성된 전문예술가팀이 함께 의견을 나눔으로써 시작된 프로젝트다.
지원 기관이 일방적으로 공모 및 심사를 통해 진행한 것이 아니라 지원기관측과 전문 기획자 및 주관 담당자 등이 프로젝트 기획 시작 단계부터 함께했다는 데 의미가 깊다.
이들은 일본 하나아트센터에서 펼쳐진 에이블 아트의 기적을 실현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문화나눔센터는 이 프로젝트를 문화바우처의 기획사업 중 문화예술로 소외계층의 삶을 구한다는 의미의 ‘활생(문화공명)’ 프로그램으로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김월식 작가를 중심으로 국악인이자 미디어아트 박사인 송미경, 연극전문가 조강이, 수원에서 펼쳐진 커뮤니티 아트 ‘인계시장’의 참여 작가였던 곽동렬과 이아람 등으로 ‘총체적 난극’ 프로젝트 기획운영팀이 꾸려졌다.
이들은 총체적 난극 참여를 스스로 선택한 안산시장애인복지관의 11명 장애인과 함께 지난 9월초부터 경기도미술관 세미나실에서 ‘놀고’ 있다.
기존의 에이블아트가 장애인들이 지난한 훈련을 통해 습득한 기술로 완성된 작품을 선보이는데 목적을 뒀다면, 결과물 따윈 상관없이 발달장애와 지적장애를 가진 이들이 그간 드러내지 않았던 각각의 관심과 장기를 꺼내는데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이에 프로젝트 팀은 참여 장애인과 함께 미술관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전시실에서의 요리 퍼포먼스를 진행했고, 10개 중 1개 맞추는 것조차 하늘의 별따기이지만 마냥 즐거운 탁구치는 모습을 지켜봤다. 어떤 장애인은 열린 문을 닫고 비뚤어진 물건들을 똑바로 줄세우는 것이 특기이고, 한 장애인은 혼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독학한 댄스를 멋들어지게 춘다.
전문가팀은 일주일에 2회 이상 장애인을 마주하며 그들 한명 한명이 관심갖고 반응하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찾는 과정을 진행했고, 그 자체가 그들이 목표로 세운 예술이 됐다.
참여 장애인 중 임성혜(27ㆍ여)씨는 “요리할 때 너무 즐거웠고 다같이 게임하고 음악을 듣는 것도 처음이었다”며 자랑했고, 강태윤(19)군도 “학교에서 연극과 밴드도 해봤지만 여기서 감정표현이 늘어나면서 더 즐거운 것 같다”고 말했다.
신서영(30ㆍ여) 안산시장애인복지관 사회복지사는 “기존에도 장애인 대상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잠재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창구라는 점에서 차이점이 확연히 드러난다”며 “이처럼 결과물을 기대하는 것보다 여러 자극을 통해 자유로운 표현을 이끌어내는 것이 장애인에게 좋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채치용 경기문화나눔센터 팀장은 “소외계층 중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경기도만의 문화바우처 기획사업으로 결과물보다 과정에 무게중심을 둔다”며 “계층별 다양한 기획사업을 시도함으로써 효과적이면서 장기적인 문화예술 나눔 계획 수립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제 총체적 난극팀은 이달 말쯤 참여 장애인의 장기를 선보일 수 있는 극본을 완성, 12월에 공연할 계획이다.
누군가는 무대 위에서 문을 여닫고, 한 장애인은 마냥 잠을 잘 수도 있다. 또 다른 이는 혼자만의 가상 공간에서 토악질이 솟구칠 때까지 춤을 추고, 말없이 조용히 요리에 몰두하는 여인도 있을 수 있다.
이 ‘정체파악 불가’ 연극을 통해 누군가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누군가는 차이를 인정하며 기적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류설아 기자 rsa119@kyeonggi.com
사진=추상철 기자 scchoo@kyeonggi.com
<인터뷰> 김월식 커뮤니티 아티스트 "획일화된 장애인 교육 프레임 변화돼야" 인터뷰>
총체적 난극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는 김월식 커뮤니티 아티스트의 말이다.
그는 장애인을 기관안에서 안전하게 관리하는 것보다 새로운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이 예술가의 몫이라 설명한다. 이에 과정보다 결과물에 집착하는 기존의 장애인 프로그램의 인식을 변화시켜, 획일화된 장애인 교육 프레임이 바뀌기를 소망하고 있다.
김 작가는 “경기문화재단 문화나눔센터의 활생문화공명같은 기획사업을 통해 문화예술이 단시간의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장기적 지원으로 향할 때 진정한 효과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며 “이번 총체적 난극이 그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존의 문화사업 지원 방식과 이를 따르는 예술가들에게도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지원방식을 공모로 진행하면 공정한 듯 보이지만 관심없던 작가들이 경제적 이유로 기존 경력과 관심 여부에 상관없이 마치 먹잇감처럼 달려들고 이를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한 채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총체적 난극에 적극 참여한 것은 공모 방식이 아닌 지원주관처와 기획자, 실행팀 등이 함께 고민한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김 작가는 또 극에 대해 “장애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찾아 극을 만들자는 것이 목적”이라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겪는 갈등과 오해, 반목 등을 긍정의 신호로 보고 그대로 노출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