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바우처의 힘]3.외로운 섬에 날아든 예술향기

꽃방석 지도 제작해 섬주민들에 선물…이것이 진짜 예술

“건강하게 안녕히 계세요!”

70대 노인을 향한, 지극히 평범한 인사였다. 헌데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렇게’ 인사하지 말란다. 그럼 헤어지기 전에 어떻게 하나. 섬 ‘풍도’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불호령에 이어 미소를 머금고 다시 말한다.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해~. 다시 만나야지. ‘안녕히 계세요’는 싫어.”

헤어지는 순간에 다음 만남을 기약하는 것이다. 섬 주민의 외로움이 묻어나온다. 이처럼 사람을 그리워하는 조용한 섬마을이 갑자기 시끌벅적해졌다.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 ‘풍도로 놀러오세요’가 불러일으킨 유쾌한 변화다.

■ 야생화가 아름다운 풍도를 아시나요

안산시 단원구 풍도동에 위치한 풍도는 인천항여객터미널에서 하루에 단 한 번 운행하는 배를 1시간 40분 가량 타야만 닿을 수 있는 섬이다.

섬 지명이다보니 ‘풍’을 ‘바람 풍(風)’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단풍나무가 많아 단풍나무 풍(楓)을 쓰다가, 청일전쟁 당시 승리한 일본이 자신들에게 익숙한 풍년 풍(豊)으로 표기한 후 굳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명 그대로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풍요로우면 좋으련만,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현재 풍도에서 거주하는 주민은 100여명으로 초등학교 분교 1개교와 경기청 안산단원서 대부 파출소 풍도분소가 있다.

젊은 사람은 모두 배가 출항하는 인천을 중심으로 떠났다. ‘꽃게잡이라도 할 수 있는 60대 할아버지 10여명이 비교적 섬의 젊은 층’일만큼 60~70대 노인인구 비중이 절대적이다.

그들이 청년이고 중년이었을 당시에는 섬 주변에 갯벌이 없어 해마다 겨우내 6개월 가량 인근 도리섬으로 이주해 수산물을 채취했다. 이 때 학교나 교회까지 모두 옮겼다가 이듬해 설이 되기 전에 돌아오는 독특한 생활방식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도리섬이 행정구역상 화성시에 포함되면서, 풍도에서만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또 배의 운행횟수도 적을 뿐더러 거리도 멀고 날씨 영향을 많이 받아 낚시꾼이나 관광객 수도 적다. 전혀 풍요롭지 않은, 풍요롭기를 간절히 바라는 섬인 것이다.

그나마 이 마을에 풍요로운 것이 있다. 이른 봄, 섬의 양지바른 언덕을 수놓는 각종 야생화다. 실제로 3~4월에만 외지인 2~3천여명이 사진 촬영차 다녀갈 정도로 ‘반짝’ 인기다.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 ‘풍도로 놀러오세요’는 이 가난하고 외로운 풍도의 보석같은 절경을 알려 진정한 풍요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 삶을 흥미롭게 하는 것이 진짜 예술

경기창작센터(안산시 대부도) 입주작가였던 박준식 사진작가는 경찰인 남편때문에 풍도에서 2년여 살았던 정은미(39ㆍ여)씨를 통해 풍도를 알게 됐다.

이후 풍도 홍보와 섬 주민의 자생적 경제 활동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미경, 김도영, 이강준, 정은미 등 젊은 작가들과 한 팀을 이뤘다.

그리고 경기문화재단 문화나눔센터가 문화예술을 통한 나눔사업으로 진행하는 문화바우처 기획사업 활생(문화공명)을 통해 활동금을 지원받아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이에 이들은 지난 8월부터 섬을 드나들며 관광안내 팸플릿 ‘풍여도지도’와 야생화를 보러 온 관광객에게 판매할 수 있는 기념풍 가방을 만들었다.

섬 주민의 미소를 촬영해 액자 프레임까지 갖춰 선물했고, 산에서 약초와 도라지를 채취하는 어르신들의 건강을 고려해 다리에 부착한 채 간이의자처럼 사용할 수 있는 꽃방석을 제작했다.

유난히 자욱한 안개로 출항시간이 늦춰졌던 지난 9일 풍도 마을회관에서 4개월여간 정을 나눈 어르신들에게 이 모든 결과물을 증정했다.

이른 아침부터 작가들을 기다렸던 어르신들은 선물도 선물이지만 오랜만에 만난 이들이 반가운지 연신 손을 쓰다듬으며 말을 건넨다.

고미순(74) 할머니는 “밭에서 힘들 때 써야하는데, 아이고 이거 아까워서 어떻게 깔고 앉어”라며 웃고, 부부 사진을 받아 든 김진남(78) 할아버지는 “마누라보다 내가 더 멋있잖어”라며 농담을 건넨다.

이날 박준식 작가는 “무뚝뚝했던 주민이 배에서 작가들과 음식도 나눠먹고 웃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했다”라며 “관광안내소와 특색있는 상품 포장지를 만들어 실질적인 삶과 문화의 결합을 추구하고 싶다”고 장기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또 “커뮤니티 아트의 결과를 확인할 때 기획자만 남고 정작 참여작가의 노력을 주목하지 않는 것은 고질적 문제”라며 “예술가는 문화예술 소외지역과 특정 계층의 정체성과 색다른 문화콘텐츠를 발굴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장기적 수단을 찾아낸다”고 덧붙였다.

사진, 지도, 가방 등 이날 섬주민의 손에 들린 것 분명 화려한 예술품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어떤 예술품보다 빛났다. ‘예술은 삶을 더 흥미롭게 하는 것’이라는 가치가 확연히 드러났기 때문이리라.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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