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삼성 축구단 사용료 1원도 깎으면 안 되는 이유

김종구 논설실장 kimjg@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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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약서 제2조다. ‘①1단계 사업으로 을(삼성전자)은 부지의 지상에다 2002년 월드컵 축구경기를 할 수 있는 43,000석 규모의 전용 축구장 1개와 보조 경기장 1개, 훈련구장 3개, 보조시설(주차장, 헬리포트) 등을 운동장 조성 기본 계획에 맞추어 조화 있게 설치한다. ②2단계 사업으로 갑(수원시)은 잔여 부지에다 마스타플랜에 의한 1단계사업을 제외한 시설물을 설치한다.’ ‘수원 제2종합운동장 조성사업 협약서’가 제목이다. 1996년 7월 12일에 서명됐고 서명인은 ‘수원시장 심재덕’과 ‘삼성전자(주) 부회장 김광호’다.

1998년 11월 30일, 이 협약서가 휴짓조각이 된다. 이때의 제목은 ‘수원축구전용경기장 조성사업 변경 협약서’다. ‘96년 7월 12일 체결된 수원 제2종합운동장 조성사업 협약서는 본 협약서로 대체한다’로 시작한다. ‘282억원은 을이 부담하여 토목공사와 일부 건축 기초공사 및 전용 경기장 기본 설계와 실시설계를 완료한다. 을이 지정한 삼성물산 측으로 하여금 본 협약 체결과 동시에 건축 기초 공사를 시행토록 한다.’ 이 282억원이 십수 년 뒤 삼성의 기부금으로 둔갑하는 바로 그 돈이다.

96ㆍ98년 협약서 읽어야

A4용지 3장짜리 이 협약파기서부터 경기도민과 수원시민의 고통은 시작됐다. 10세 아동부터 80세 노인까지 나섰다. ‘1인 1의자 갖기 운동’에 시민들의 푼돈이 모였다. 하지만 3천억원은 너무 컸다. 경기장도 없이 유치전에 뛰어들었다는 조롱이 이어졌다. 결국 나선 게 정부와 경기도다. 도민이 1천430억원, 시민이 953억원, 정부가 440억원을 냈다. 삼성이 떠난 자리는 그렇게 메워졌다.

하필 그때 사회부장이었다. 공무원들의 낙담한 표정을 봤고, 시민들의 한 맺힌 원성을 들었다. 특히 생생한 게 싸늘히 돌아서던 삼성의 뒷모습이다. ‘돈 없어서 못 합니다’라는 한 마디를 남긴 삼성이 철저하게 돌아섰다. 그 해 매출 20조 841억원. 연매출 3천900만원(1969년)으로 시작된 삼성전자가 글로벌 기업의 몸집을 갖춘 게 공교롭게 그 해다. 경실련이 “돈 없어서 못 한다더니…”라고 따졌지만 무시됐다.

누구는 “삼성이 이럴 수 있느냐”고 비난했고, 누구는 “삼성을 이해해야 한다”며 옹호했다. 그런데 이쪽도 저쪽도 한가지 결론은 같았다. “삼성이 그냥 입 닦고 끝내지는 않을 것이다. 경기가 나아지면 어떤 형태로든 참여할 것이다”. 이게 얼마나 순진한 기대였는지 확인되는 데 십수 년이 걸렸다. 축구장의 위기는 2002 월드컵 이후부터였다. 누적적자만 수십억에 달했다. 많은 이들이 이 때도 삼성을 쳐다봤다. 하지만 삼성은 또 외면했다. 적자를 메운 건 도민의 돈(60%)과 시민의 돈(40%)이었다. 그리고 2012년 11월. 삼성 축구단發 축구장 얘기가 나돈다. ‘매년 내는 축구장 사용료 7억원이 비싸다. 깎아 달라. 수원시가 축구를 죽이고 있다’.

2012년만 떼어 놓고 보면 이 말이 맞다. 프로야구 10구단에겐 야구장을 공짜로 쓰라고 내줬다. 그런데 바로 옆 축구장에선 매년 7억원씩 받고 있다. 형평성을 잃은 행정이다. 삼성축구단을 지켜온 서포터즈들에겐 백번 흥분할 일이다. 그런데 그 속에서 입 닫고 있는 고약한 기술이 있다. 2012년의 7억원 얘기만 뿌려댄다. 시민을 들뜨게 했던 1996년의 3천억원 약속은 숨기고 있다. 시민을 분노하게 했던 1998년의 3천억원 파기는 덮고 있다.

균형있는 토론이 먼저다

혹세무민 아닌가. 2012년을 얘기하려면 1998년도 얘기해야 하는 것이다. 사용료 7억원을 얘기하려면 파기된 3천억원도 얘기해야 하는 것이다. 수원시의 형평성을 얘기하려면 삼성의 도덕성도 얘기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토론의 시작은 인터넷 공간이 아니라 삼성의 공문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균형과 격식이 갖춰지지 않은 협상으로는 단돈 1원의 사용료도 인하하면 안 된다. 그게 원칙이다. 이를 어기는 시장이 있다면 그 시장은 그 자리부터 내놔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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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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