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유신 40년이란 사실을 아는 이 드물다. 1972년 10월 17일의 일이었으니 벌써 40해를 훌쩍 넘겼다. 그 해는 국회를 해산 당했고 정당 및 정치활동이 강제로 중지되었다. 유신체제는 대통령의 초헌법적 권력을 용인했다.
당시 비상조치 제1호 포고문에 따르면, 실내외 집회, 시위를 일절 금했고, 언론, 출판, 보도 및 방송은 사전검열을 받아야 했다. 대학은 휴교조치 되었고, 정당한 이유 없이는 직장 이탈이나 태업행위도 할 수 없었다. 야간 통행금지는 물론이고 포고를 위반한 자는 영장 없이도 수색, 구속되었다.
1979년 10월 26일 유신체제가 막을 내린 뒤, 30여 년이 흘렀지만 우리 사회는 유신체제의 그림자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유신의 망령은 한국 사회 내부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서 마치 숙주에 기생하는 괴물들처럼 작동한다.
김기라의 ‘망령-역사적 괴물’은 수 천 년 역사의 층위에 새겨진 신화와 종교, 영웅의 판타지가 인간사회에 망령으로 떠도는 것을 콜라주로 표현했다. 그는 헬레니즘과 길가메시 서사시의 수메르문명, 이집트 나일문명, 황하문명, 인더스의 고대 문명권과 기독교와 기독교 파생의 온갖 유사종교, 무슬림, 유불선, 신도(神道)의 이미지를 콜라주로 뒤섞었다.
서로 화합할 수 없는 것들을 섞어서 혼합한 뒤, 세상에 없는 우상을 창조해 냈다. 각각의 형상들이 인신(人神)과 신인(神人), 신상(神像), 성인, 영웅들의 이미지와 그 이미지의 신화적 상징물들이니, 이 우상의 능력은 ‘초특급울트라메가슈퍼파워’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영험함’의 극치일까? 아니다. 그는 이 작품을 ‘망령-역사적 괴물’이라 명명했다. 신성한 것들의 더하기는 ‘빛’이 아니라 ‘망령’이란 이야기다.
작가는 신성한 믿음으로부터 발현한 거룩한 숭고의 도상들이 어느 순간 욕망으로 변질된 순간들에 주목했다. ‘신성한 믿음’과 ‘거룩한 숭고’가 상실된 자리에서 숭배를 소비했던 욕망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주지하듯 초기 종교에서는 신성을 중시해 ‘몸의 신체’를 만들지 않았다.
최근 4.19혁명 당시 민중의 힘으로 무너뜨렸던 독재자의 동상이 다시 세워졌고, 심지어는 유신의 부활을 부르짖으며 이데올로기 극단화를 부추기는 현상이 빈번하다. 초헌법적 권력의 대통령을 다시 찾는 것이라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자칫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독재를 부르는 순간, 민주주의도 얼마든지 부패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김종길 경기도미술관 교육팀장ㆍ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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