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섭 칼럼] 엄마표, 노인표, 택시표…

이연섭 논설위원 yslee@ekgib.com
기자페이지

#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예산소위가 지난달 19일 정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상보육을 확대하는 예산안을 의결했다.

취학전 아동의 어린이집 보육과 가정 양육수당 예산을 정부안보다 1조2천915억원 늘려 3조6천152억원으로 증액한 것이다. 0~2세 무상보육 대상을 소득 하위 70%로 축소하려던 정부 방침과 달리 전 계층으로 환원했다. 전업주부 자녀들은 반나절만 보육료를 지원하고 맞벌이는 종일 지원하도록 틀을 바꾸려 했지만 이것도 반영하지 않았다.

또 보육시설을 이용않는 0~5세 자녀 가정에는 소득에 상관없이 매달 20만원씩 양육수당을 지급(7천476억원 증액)하기로 했다. 정부는 소득 하위 70%까지 지원하되 3~5세는 10만원만 계획이었지만 국회가 모든 계층으로 대상을 넓히고 금액도 일괄 20만원으로 올린 것이다.

정부가 내년부터 0~2세 무상보육 지원 대상을 축소한다는 방침을 정했을 때 대선주자들과 복지위 의원들은 일제히 반발했다.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당 문재인 후보 모두 ‘0~5세 무상보육’을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법 어기며 기초노령연금 인상

# 보건복지위 예산소위는 지난달 20일엔 기초노령연금을 20% 올리는 안을 통과시켰다. 기초노령연금을 국민연금가입자 3년치 평균소득의 5%(월 9만7천100원)에서 6%(11만6천600원)로 올리는 증액안을 의결한 것이다. 액수로 따지면 20%를 더 주는 내용이다. 이대로 하면 예산이 6천484억원(지방비 1천647억원 포함) 더 필요하고 노령연금 예산도 총 5조원으로 늘어난다. 복지부가 “연금제도개선 특별위원회에서 결정해야 한다”고 반대했지만 무시됐다.

예산소위의 증액안 의결은 법률 위반이다. 기초노령연금법은 기초노령연금을 2028년까지 국민연금가입자 평균소득의 10%로 단계적으로 올리되 재원 대책, 인상 시기와 방법 등은 국회에 연금제도개선특위에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19대 국회에는 연금제도개선특위가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기초노령연금을 2017년까지 두배로 인상하되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처럼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 택시에 대중교통 수단이라는 법적 지위를 주는 대중교통법 개정안(일명 ‘택시법’)이 지난달 21일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해 버스와 마찬가지로 준공영제 혜택을 받게 하고, 환승할인 등으로 발생한 적자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재정지원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버스업계는 즉각 택시의 대중교통수단 포함에 반발, 전면 파업에 돌입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전국의 택시업계 종사자는 개인택시 16만명을 포함해 30만명이다. 이 택시표를 의식해 국회 국토해양위에서 ‘택시법’을 과속으로 밀어부쳤고, 갈등과 혼란만 부추기다 보류된 상태다.

지금도 택시업계는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연간 7천600억원 규모의 유가보조금과 부가가치세 지원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민들이 이용하기 부담스러운 택시를 대중교통에 포함시켜 더 지원하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

현금 퍼주기 복지는 ‘포퓰리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 국회의원들이 선심성 예산, 퍼주기 입법들을 쏟아내고 있다. 엄마표를 위한 무상보육 예산 증액, 노인표를 위한 기초노령연금 인상, 택시표를 위한 택시의 대중교통화 입법 등이 모두 그렇다. 부도가 나면 세입자의 임대보증금을 정부가 전액 책임지는 부도공공건설임대주택법 개정안, FTA 체결에 따른 농어업인 지원 특별법 등도 건설업계, 농어민의 표를 겨냥한 것으로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다.

포퓰리즘에 빠진 국회가 보여주는 극단적인 행동이다. 헌법 제57조에 국회는 정부 동의없이 정부가 제출한 예산을 증액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음에도 이를 무시한채 이상스런 작태를 보이고 있다. 나라 곳간과 국민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는 무책임함과 부도덕함이 놀랍다.

국가 재정은 국민의 소중한 혈세로 이뤄져 있다. 국회의원들의 쌈짓돈이 아니다.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는 민감한 법안들은 사전에 철저하게 심의를 하고 국민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 표를 의식한 ‘현금 퍼주기’ 무상복지, 안된다. 선거가 끝나면 물거품처럼 사라질 장밋빛 공약들로 국민을 우롱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