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은 천성이 학문을 좋아해 세자가 되기 전에도 책을 읽으면 반드시 백 번을 읽고, 좌전(左傳)과 초사(楚辭)는 다시 백 번을 더 읽었다고 한다. 병이 났을 때에도 읽기를 그치지 않아 병이 점점 심해졌다. 그러자 태종이 내시에게 명해 갑자기 세종의 방에 들어가서 책을 다 없애버렸다. 하지만 ‘구소수간(歐蘇手簡)’ 한 권이 병풍 사이에 끼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세종은 그 책을 1천100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우리 시대에 같은 책을 1천번, 아니 100번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회가 점점 더 종이로 된 책보다는 TV, 스마트폰, 컴퓨터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그러나 구리시에는 책 읽는 계절이 따로 없다.
시가 지난 2007년 ‘책 읽는 도시, 문화의 도시 구리시’를 선포한 뒤 시민들이 사시사철 책을 가까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는 그동안 다양한 행사를 통해 독서운동을 펼쳤다. 시민주도로 책 읽기 한마당, 체험수기·UCC 공모 등 다양한 독서 권장 행사도 진행 중이다.
책 읽기 릴레이는 책을 이웃 간 돌려보며 자연스레 책 읽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하자는 뜻에서 기획된 독서 캠페인이다. 지난 2008년 10월 7일 구리시청 대강당에서 시작됐다. 엄선된 200권의 책이 시민과 초등학생, 기관장 등에 배포됐다.
일주일 동안 책을 읽고 다음 주자에게 넘기는 방식으로, 17일 동안 총 2천여명의 시민이 책을 읽게 됐다. 이후 2천300여명의 시민과 공직자가 참여하는 등 큰 호응을 얻었다.
시는 독후감 공모전도 펼치고 있다. 전 시민들을 대상으로 고 박완서 작가의 도서 목록을 알려주고 우수 독후감을 선정 시상하고 있다. 특히 병원에 입원한 환자에게도 도서를 배달하는 등 책 읽는 사회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고 있다.
‘내마음의 책 한권’ 행사도 지난 2009년부터 전 시민들을 대상을 시작, 당선작 순시 전시회도 개최하는 등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 밖에 북콘서트, 독서지도 특강, Book Cafe 등 다양한 볼거리와 읽을거리 등도 운영되고 있다.
정선자 구리시립도서관장은 “학부모가 아이에게 책을 권하고, 아이가 담임교사에게 전해 반 전체가 돌려 읽는 사례, 친하지 않았던 이웃과 친지에게 책을 선물하며 다시 가까워지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며 “구리시 전체가 책으로 인해 행복해지는 날까지 릴레이를 계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구리시의 독서운동은 관 주도가 아닌 시민 주도의 운동이다. 거실을 서재로 구리시민운동본부(공동본부장 홍도암·김문경)가 중심이 되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면서 독서문화가 각 가정에 뿌리내리고 있다.
홍보대사도 성인 65명, 청소년 250명 등 총 315명이며 거실을 서재로 홈페이지를 통해 매월 자체적으로 추천 도서를 소개하고 있는 등 독서운동의 소통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 2008년 10월 11일 구리시체육관에서 시민 5천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책 축제 한마당’을 개최하기도 했다.
거실을 서재로 운동의 원년인 지난 2007년 7천여 가구가 동참했으며 2009년 4월 1만5천가구가, 올해 11월 말 현재 3만여 가구가 참여해 전체 가구(7만 가구) 절반에 가까운 가구가 참여하는 놀라운 실적을 올리고 있다.
마을버스에 홍보문을 부착하고 현수막·소식지 등을 통해 참여를 독려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선 덕분이다.
구리시는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각종 행사 등을 지원하는 데 적극적이다. 박영순 구리시장은 “시민의 손에 의해 이뤄지는 독서운동이기에 더 의미가 깊다”며 “물심양면 지원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구리시민운동본부와 시립도서관, 구리시는 향후 ‘책 읽기 릴레이 독후감 공모’, ‘작가와의 만남’, ‘독서강좌 개설’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독서 열풍을 20만 시민들에게 확산시켜 나간다는 방침이다.
구리시에는 시립도서관 3곳과 작은도서관 5곳이 있다. 많지는 않지만 이 도서관들은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지만 한 곳이나 마찬가지다.
통합도서관 시스템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은 통합 도서검색은 물론 구리시내 어느 도서관에서 대출신청과 반납이 가능하다.
갈매동과 교문2동, 수택1동 주민센터와 인창동 문예회관 작은도서관은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이용 시간은 월요일부터 금요일(정부 지정 공휴일 및 국경일 제외)까지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관되고, 1회 3권의 책을 14일 동안 대출 받을 수 있다.
시가 공원, 버스정류장, 지하철역, 관공서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 생각하면 주저없이 도서함과 서가를 설치해 만든 열린도서관도 37개소에 달한다.
이 도서관의 책들은 일부 신간도서를 제외한 대부분이 시민들의 기증으로 채워지고 있는 등 매년 1만권 이상의 도서가 기증돼 3만5천여권의 도서가 순환배치 되고 있다. 잡지는 매월 6종씩 비치하고 있으며 자율 대출과 반납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특히 공원마다 월별로 ‘햇살아래 책 읽기 행사’가 펼쳐지고 권장 도서 전시 및 부대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다.
정선자 구리시립도서관장은 “‘책 읽는 도시, 문화의 도시 구리시’를 선포하고 5년이 지나는 동안 각종 독서 인프라가 구축되고 시민 참여가 늘고 있다”면서 “독서가 도시를 성장시키는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인터뷰> 홍도암 거실을 서재로 구리시민운동본부장 인터뷰>
“독서의 효과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언어적 사고력은 물론 창의력과 상상력이 발달해 어휘력이 풍부해지고 글에 대한 이해력이 높아지며 배경지식이 쌓여 사고력이 확장됩니다. 독서 습관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홍도암 거실을 서재로 구리시민운동본부장(전 구리시노인회장)은 “독서습관은 그 어떤 유산보다도 찬란하고 고귀하며 변화무쌍한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며 “지금 당장 거실 서재에 위편삼절(韋編三絶:공자가 주역을 너무 많이 읽어 책을 꿰맸던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사자성어)을 걸어두고 부모부터 실천해야 한다”고 밝혔다.
‘거실을 서재로 구리시운동본부’는 지난 2007년 독서를 통한 도시의 지식경쟁력과 문화도시 역량 제고를 위해 발족한 순수 민간기구이다.
본부는 그동안 시민들이 언제, 어디서나 책과 만날 수 있는 친서환경(親書環境) 조성의 일환으로 ‘거실을 서재로―책 축제 한마당’ 행사와 ‘거실을 서재로 사진전·가구전’ 등을 개최했다.
새마을문고 구리지회가 ‘도서 교환 시장’을, 유명 출판사와 인터넷 서점이 ‘도서 할인 판매 행사’ 등도 각각 열었다.
또 교보문고가 진행하는 ‘독서 진단’을 포함, ‘좋은 책 바자회’, ‘영어 도서관’, ‘책 읽는 버스’ 등 책에 관한 다양한 행사를 준비했다. 본부는 앞으로 가톨릭대 등과 자료공유 협약을 통해 대학의 전문자료까지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방안도 마련할 게획이다.
“독서의 기쁨을 이웃에게 두루 나누는 ‘독서문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힌 홍 본부장은 “시민과 함께 전국에서 가장 많은 책을 읽는 행복한 구리시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구리=한종화기자 hanjh@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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