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사랑이 닿는 그곳
“안녕”, “안녕” 유치원생 인사만큼이나 다정한 목소리가 들린다. 2012년 마지막 봉사가 있던 지난해 12월 16일 시흥 엘림요양원에서 본 마르사 회원들의 모습이었다. 1965년 올해 47세인 이들이 나누는 인사라고 생각하기에는 오글거림(?)이 느껴진다.
오랫동안 좋은 일을 하며 지내다보니 이 생활에 젖어 처음 온 사람들도 어릴 적 친구를 대하는 것처럼 같은 마음, 같은 모습으로 섞여간다는 게 마르사 회원들의 설명이다.
일찍 온 회원들끼리 둘러앉아 어제 봉사는 어땠고, 지난주는 어땠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어느 정도 인원이 모이자 하늘색 반팔티에 ‘마르사’라고 쓰여있는 티를 똑같이 갈아입고 어르신들을 만나러 간다. 누가 목욕시키고, 누가 청소하고 이런 말도 없다. 늘 해오던 것처럼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할 뿐이다.
32명의 할머니가 머물고 있는 엘림요양원 봉사는 할머니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됐다. 남자 회원들은 청소기와 걸레를 손에 들고 구석구석을 열심히 청소했고. 여자 회원들은 각기 방으로 흩어져 거동을 제대로 하지 못해 씻기가 어려운 할머니의 손과 발을 자처하고 나섰다.
한쪽 방에선 대화의 장이 열렸는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복희 회원이 손톱을 깎아주며 ‘식사는 하셨는지’, ‘오늘은 뭘 했는지’, ‘나는 안보고 싶었느냐’며 말동무를 해주니 적적했던 할머니들이 쉴 새 없이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던 것. 물론 노환 때문에 귀도 잘 안 들리고, 때로는 소통도 자유롭지 않지만 손을 부여잡은 봉사자와 할머니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끈이 있는 것처럼 서로의 마음이 이어져 있었다.
거실로 눈을 돌려보니 유명환 회원이 한 할머니와 장난을 치고 있었다. “어머니, 왜 오늘은 나 사탕 안 줘?” “오늘은 없어. 다음에 두 개 줄게.” 알고 보니 이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유씨란다. 올 때마다 알사탕 하나씩을 꼭 챙겨주는 그런 사이라고.
치매가 오고, 지병이 있어 이곳에 입소했지만 꾸준히 자신들을 만나러 와주는 봉사자들의 사랑을 기억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복희씨는 “제가 허리 수술을 해서 목욕을 시켜 드리지 못해 손ㆍ발톱 깎기, 매니큐어 발라주기를 하고 있다”며 “옆에서 다른 어머니들 손톱 깎고 있으니까 옆에 누워계시던 어머니가 살며시 손을 뻗더라.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윤정숙 엘림요양원장은 “이분들은 정말 봉사를 내 일처럼 열심히 해주신다. 동갑이라는 결집력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며 “이분들이 왔다가 가시면 힘이 된다”고 전했다.
마르사 회원들은 시흥뿐만 아니라 수원 2곳, 인천, 서울, 일산에서도 매주 토요일, 일요일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2002년 시작돼 11년 동안 이어오고 있는 것. 1965년 뱀띠 모임 카페에서 활동하다 금전 봉사보다 노력 봉사로 가자는 뜻을 한 데 모아 소모임으로 봉사방을 만든 게 계기가 됐다.
시작 당시 최용태 회장을 중심으로 미인가 시설 리스트를 뽑아 시설을 둘러보고, 주위 평도 들어보면서 신중하게 수원 2곳, 인천, 서울, 일산, 시흥 등 총 6개 기관과 인연을 맺었다.
1~2년이 지났을 무렵 우여곡절이 찾아왔다. 봉사가 끝난 뒤 함께 식사를 하는 사진들을 카페에서 보고 사회에서 만난 남녀들이 봉사를 핑계로 먹고 논다는 식으로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눈초리 때문에 회원들은 하나둘씩 빠져나갔고 최 회장은 어르신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무도 찾지 않는 기관을 자녀와 함께 가서 봉사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최 회장은 “그때 인터넷이 막 활성화될 때였습니다. 그래서인지 회원들이 많이 빠졌지만 이미 시작한 일인데 포기할 순 없었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런 고난과 역경을 딛고 나니 지금은 50여명의 회원들이 마르사라는 이름을 걸고 꾸준히 봉사활동을 펼치는 결실을 얻게 됐다. 물론 일정이 맞지 않아 참석하지 못하는 회원 중에는 제빵을 하는 친구가 매번 빵을, 묵 공장을 하는 회원은 어르신들이 먹을 묵을 보내주는 방식으로 봉사에 참여한다.
매년 여름에는 마르사 회원이 다 함께 힘을 모아 일일카페라는 큰 행사를 치르고, 수익금으로 가을엔 송편을 빚고, 겨울엔 김장을 담가 필요한 기관에 전달한다.
최용태 회장은 “처음 마르사 활동을 시작했을 때 친구들에게 카페에 봉사 후기를 쓰라고 했었다. 다녀와서 남긴 글들을 보며 참여하지 않은 친구들도 느끼는 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그때부터 참가 인원이 늘었고, 한번 참가한 친구들은 거의 안 빠진다. 대부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르사 10년, 뱀띠 친구라는 이름으로
지난해 12월 마르사 10주년을 맞아 동창회를 열었다. 기간에 상관없이 봉사에 참여했던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마르사의 10년을 함께 기억하고 더 발전할 수 있는 10년을 만드는 자리였다.
그들의 10년에는 웃고 우는 일도 많았다. 점점 상태가 악화되는 어르신을 볼 때마다 혹은 매일 그 자리에 계시던 어르신이 어느 날 집에 가셨다(돌아가셨다는 표현이라고 함)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을 때 이들의 마음은 쓰라렸다. 다만 함께 하는 뱀띠 친구들이 있기에 그들은 다시 웃을 수 있고 또 다른 어르신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수 있었다.
마르사가 수도권 지역에서 펼치는 사랑의 힘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이젠 65년 뱀띠 카페에서 활동 중인 타지역 회원들이 마르사 지역회를 구성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한다. 장수 봉사동호회가 빛나는 순간이다.
노성민 전년도 회장은 “뱀띠 친구, 봉사라는 좋은 마음을 공통으로 갖고 있어서 현재까지 유지를 잘해왔다”며 “올해는 좀 더 체계적인 모양새를 갖추고 친구들과 함께 꾸준히 사랑을 전달하고 싶다”고 밝혔다.
뱀은 높은 나무든, 거친 바닥이든, 물 속이든 어디든 부드럽게 지나간다. 뱀띠 해인 올 한해 사랑의 피가 흐르는 이들 마르사의 봉사가 굴곡 없이 순조롭게 멀리멀리 펼쳐지길 기대해본다.
장혜준 기자 wshj222@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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