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지역 전통문화와 민속예술의 '구심점' 자리매김
옛날 가난한 집에 효성 깊은 삼형제가 노모를 모시고 살았다. 어느 날 나무를 하러 간 형제가 돌아오지 않자 어머니는 산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온 형제는 어머니가 없자 찾아나섰고, 어디선가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려 달려가 보니 낭떠러지 밑에서 어머니가 호랑이에 쫓기고 있었다.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세 아들이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는데 그 순간 세 덩어리의 바위가 됐다. 이천시 설봉산에 있는 ‘삼형제 바위’의 전설이다.
삼형제 바위 전설을 간직한 설봉산의 이름을 따 26년째 이어오는 축제가 있어 눈길을 끈다. 바로 이천시 대표 문화브랜드로 거듭난 ‘설봉문화제’다.
■이천 지역문화의 중심 ‘설봉문화제’
설봉문화제는 개회식과 폐회식이 없다. 한 장소에서 하루 이틀 열리는 축제와 달리 이천 시내 곳곳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10월 20일부터 28일까지 9일 동안 진행된 제26회 설봉문화제는 10월 20일 설봉공원에서 ‘이천민속축제 한마당’으로 문을 열었다.
이천문화원 회원을 중심으로 구성된 ‘소슬패’가 신명나는 가락을 전하며 참가자들의 흥을 돋았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 2008년 21세기 한국음악프로젝트에서 월드뮤직상을 수상한 5인조 퓨전국악그룹 ‘이스터녹스’가 무대에 올라 서양리듬이 아닌 우리 장단으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였다.
설봉공원 놀이마당에서 펼쳐진 ‘허수아비 가족축제’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처음으로 다문화가족이 참여하는 축제로 진행, 63개 다문화가정 총 203명이 각 나라의 특색을 살린 개성 있는 허수아비를 만들었다. 이때 만들어진 허수아비는 이천쌀문화축제 행사장에 전시돼 축제장을 찾은 관광객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특히 설봉문화제 프로그램 중 청미문화제가 눈길을 끈다.
이천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문화적 소외공간이었던 장호원의 지역문화 수준을 높이는 데 크게 도움이 된 프로그램으로 평가받고 있다.
청미문학회, 장호원미술인회, 청미 사진 동호회 등 장호원의 문화단체가 중심이 돼 시화전, 미술전, 사진전과 더불어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시낭송회가 진행돼 장호원 지역 주민으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설봉문화제의 대미는 무병장수와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이천거북놀이가 단연 돋보였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50호로 지정된 거북놀이는 짚으로 만든 커다란 거북이 등에 소원을 써서 걸고, 작은 거북이는 등에 멘 채 참가자들이 함께 춤을 추는 축제로 이뤄졌다.
마지막에는 참가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소원이 적힌 짚거북이를 태우며 남은 한해를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기원했다.
이와 함께 이천의 초중고 학생들이 갈고 닦은 실력을 뽐내는 학생국악경연대회, 수준 높은 서예작품을 선보이는 이천 연합 서예전, 사진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모여 작품을 출품한 이천 사진전이 열려 설봉문화제의 재미를 배가시켰다.
■또 다른 지역 축제를 탄생시키다
2012년 스물여섯돌을 맞은 설봉문화제는 오랜 시간 이천 지역의 전통문화와 민속 예술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특색 있는 향토문화제로 자리매김했다.
설봉문화제는 축제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며 본래 문화제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이천국제조각심포지움, 도자기축제를 개별 축제로 탄생시키고, 이천쌀문화축제의 발전을 도왔다.
이천의 대표 축제로 불리는 도자기축제는 지난 1986년 설봉문화제의 일환으로 설봉호텔 회의실에서 소규모 행사를 개최한 것이 시초다.
지자체의 예산 지원 없이 이천문화원 단독 주최로 행사를 준비하면서 어려움이 지속되자 주인공이어야 할 도예인들의 냉담한 반응이 이어졌다. 문화원은 전통도예를 테마로 하는 축제의 필요성과 가능성에 대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냈고, 1995년 당시 문화체육부의 호응을 얻게 됐다. 결국 집중지원축제로 선정됐고 설봉문화제의 일부분이었던 도자기축제는 독립된 축제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1998년 7월 ‘사랑과 평화’를 주제로 시작된 이천국제조각심포지움 역시 올해로 15회째를 맞으며 이천을 대표하는 문화 예술 행사로 발돋움했다. 문화원은 당시 이문열 작가와 강대철, 박찬갑 등 이천지역에서 활동하는 조각가를 중심으로 조각심포지움을 열고 불가리아 조각가 토노브 벤치슬라보브, 독일의 도스튼 딕만, 네덜란드의 톤 칼레 등 전 세계 조각가들을 초청했다. 이처럼 규모가 커진 심포지움은 지난 2006년 개별 축제로 독립해 자체 조직위원회가 구성될 만큼 발전했다.
이천하면 떠오르는 ‘이천쌀문화축제’도 설봉문화제와 어깨를 나란히 한 축제다.
1999년 이천농업인축제로 시작해 2001년 이천햅쌀축제, 2004년 이천쌀문화축제로 변화한 이 행사는 2012년 47만여명의 관광객이 다녀가면서 270억원 가량의 경제효과를 거두는 등 이천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축제로 성장했다.
이동준 이천문화원 사무국장은 “설봉문화제는 전통문화 계승, 공동체 문화 보존 등을 이어오고 있는 가장 오래된 지역 축제”라며 “다양한 장르의 축제를 분화시킨 산실”이라고 말했다.
■전통문화의 창조적인 변신 꿈꾼다
이천문화원은 척박한 문화토양 속에서 50년사를 거쳐오면서 문화유산에 대한 중요성을 시민들에게 인식, 시도하는 방식으로 설봉문화제를 이끌어왔다.
특히 이천시가 2010년 유네스코 창의도시를 지정된 이후에는 이천의 고유한 문화적 특성을 현대적으로 살리는 작업에 주력했다. 도시 재구조화를 위해서는 지역 문화가 창의적 사고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현재 이천의 미래를 이끌어 갈 청소년을 대상으로 지역의 문화, 역사, 예술에 대한 이해와 교양을 갖출 수 있는 문화교육사업을 추진 중이다. 또 농촌지역의 경우 노령인구 증가로 문화와는 단절되는 현상이 심화돼 누구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우리 마을만이 갖는 이야기가 담긴 코스’ 개발을 준비하고 있다.
조명호 이천문화원장은 “설봉문화제가 지금까지 산실의 역할을 했다면 앞으로는 전통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창의적 실험을 시도해야 할 시점”이라며 “이천지역만이 갖는 독특한, 차별화된 문화콘텐츠를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전통문화의 창조적은 변신을 통해 세대 간 소통과 공감이 이루어지는 진정한 축제로 거듭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