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하는 에듀 클래스]<21>문 門 안과 밖의 세상, 우리들의 이야기

아이들의 상상을 그대로 연극무대에… 건강한 자아 형성에 도움

소원을 이뤄주는 사탕 가게가 있다. 시험을 100점 맞게 만들어주는 사탕부터 달리기 실력을 높여주는 사탕, 엄마가 1주일간 사라지는 사탕, 왕따 안 당하는 사탕 등 각양각색 소원만큼 사탕 종류도 다양하다. 세계 경제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을 ‘대박’ 장사지만, 실제가 될 순 없다. 그런데 이 가게가 등장했다. 상상을 무대 위에 현실화한 연극을 통해서다.

■허술한데 감동적인 연극, 그 이유는

지난해 12월15일 안양의 좁은 골목 사이 허름한 건물 지하에 자리잡은 어두컴컴한 마술극장(만안구 안양 6동).

소원을 이뤄주는 사탕 가게를 배경으로 한 연극 ‘서진이 이야기’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단짝 서진이와 은지다. 빼빼로데이 전날, 은지는 채팅으로 철수를 좋아한다고 비밀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다음날, 학교에 이 비밀이 퍼져 은지는 서진이를 의심하고 싫어하는 철수때문에 당황해 가출해버린다. 친구를 찾아주는 사탕을 사러 간 서진이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말에도 은지를 찾기 위해 먹는다. 서진이는 은지를 찾을 수 있을까.

결론은 없다. 1년 후, 서진이는 길에서 마주친 은지를 기억하지 못한채 지나가고 은지가 이를 의아해하는 방백으로 끝난다.

객석에 앉아있던 꼬마 배우들은 다음 작품을 위해 소품을 옮기며 무대 뒤에서 분주하다.

자신의 아들과 딸을 카메라와 마음 속에 담느라 눈을 떼지 못했던 학부모들은 서로 소감을 나누며 새로운 막이 오르기를 기다린다.

60여명의 관객은 다시 작품에 몰입한다. 이어지는 두 번째 작품은 ‘사탕가게 전쟁’이다.

손님 많은 마법의 사탕가게를 시샘하는 바로 옆 평범한 사탕가게 주인이 주인공이다. 특히 마법의 사탕가게 주인이 늘 자신을 제치고 상과 임원을 꿰찼던 1인자 친구임을 알고 복수심을 더 키운다. 마법의 사탕 레시피를 훔치고 부작용을 겪는 사람들을 선동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자신의 가게가 흥할 것이라 점쳤던 무당의 ‘사과하라’는 점괘에 극적으로 화해, 동업하며 행복을 꿈꾸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억지스러운 기승전결, 대사와 동선을 실수해버린 꼬마 배우들, 타이밍이 맞지 않는 배경음악과 조명 등 프로 극단의 연극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처럼 허술하기 그지없는 연극 두 편은 이날 관객에게 그 어떤 작품보다 큰 감동을 선사했다.

“지난 여름 1차 공연때보다 성숙하고 성인 배우 못지 않은 연기력을 갖췄다. 특히 아이들이 이야기의 답을 관객에게 고민하도록 만드는 등 완성도 높은 스토리가 감동적”이라는 윤두섭(69) 할아버지의 관람소감이 이를 방증한다.

무대에 선 최우민(13)양의 어머니 김수자(44)씨도 “소통의 어려움을 주제로 한 아이들의 연극을 통해 내 삶과 주변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며 “힘들어하면서도 연극을 준비하는 자녀가 마치 중독된 것 같았는데 다음부터는 학부모도 함께 하면 더 좋을 것 같다”고 바람을 전했다.

■예술과 함께 성장한 아이들

노인을 감동시킨 이 연극의 매력은 무엇일까.

두 작품 모두 안양 소재 초등학교의 4~6학년 재학생 13명 어린이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완성한 무대극이라는 점이다.

이 학생들은 ‘2012 문화기반시설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공모사업’에 선정된 예술교육단체 바람꽃커뮤니티씨어터(대표 김현진)와 안양 비산도서관이 지난 4월7일부터 15회씩 총 두 차례에 걸쳐 진행한 ‘문 門 안과 밖의 세상, 우리들의 이야기’를 통해 만났다.

각기 다른 학교에 다니는 이들은 한 편의 연극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 희곡 작가, 배우, 감독, 스탭이 됐다.

이를 위해 안양예술공원과 관양시장 등 지역의 의미있는 공간을 답사하며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연극을 만들기 위한 기초 지식을 배우고 익히는 것은 물론, 지역의 공연장에서 작품을 보며 자신이 만들 연극을 상상하기도 했다.

일상에서 길어올린 수많은 이야기와 캐릭터에 초등학생 그네들의 현실을 투영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연극 ‘서진이 이야기’와 ‘사탕가게 전쟁’이다.

두 연극의 공통점은 소원을 이뤄주는 사탕이 존재한다는 상상이다. 이 얼마나 기발한가.

로또 1등 맞게 해주는 사탕이나 미운 사람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주는 나쁜 사탕은 없다. 그저 부모님께 혼나지 않게 공부 잘하고, 친한 친구와 사이좋게 지낼 수 있도록 해주고, 왕따 당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등 지극히 어린이다운 현실과 순수한 소망을 반영한 착한 사탕들이다.

어린이다운 상상에 현실을 반영, 연극으로 올리기까지 김현진 바람꽃 커뮤니티 씨어터 대표를 비롯한 연극 교육 전문가 총 4명의 강사가 함께했다.

난생 처음 연극 제작에 나선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터.

이와 관련 두 작품의 공연이 끝난 자리에서 일명 ‘꿈나무(이영실)’ 강사는 “머릿속에 필름처럼 아이들과의 첫 만남부터 공연하기까지의 모든 순간이 펼쳐졌다”며 감격스러워했고, ‘둘리(변채우)’씨 역시 “무대에서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에 그간의 갈등과 어려움을 한 순간에 날아가는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특히 교사들은 창작물을 만드는 과정에 고충이 존재했지만 참여 아이들의 자아 성장과 발달에 연극적 체험이 그 어떤 교육과 비교할 수 없는 효과를 낳았음을 확신하는 공통된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또박또박 작품의 의미와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아이들은 초등학생 고학년 이상의 분위기를 풍겼다.

공연에 참여한 육준민(12)군은 “이야기를 만들고 무대에 올리는 것이 어려웠지만 친구들과 함께하며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이날 재치있는 연기력이 돋보인 양성민(13)군은 배우가 희망 직업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사육사가 꿈”이라며 “앞으로 동물공연을 기획하고 싶고 이번에 연극을 만든 것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며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무대 밖에서 만난 아이들은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마음 속 이야기를 끄집어내 예술로 창조하면서 성장한듯 한층 어른스러웠다.

■지역성 기반 교육으로 장기적 효과 담보해야

주 5일 수업으로 올 초 갑자기 생긴 이 토요예술교육프로그램의 중심축은 뭐니뭐니해도 연극이다.

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강사들이 중요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지역성’이다.

우선 참여 어린이들과 지역의 특정 장소를 답사하고 지역공연시설에서 작품을 관람하는 프로그램을 구성한 것이 그러하다.

아이들이 지역과 자신의 관계를 알면서 건강한 자아상을 형성할 수 있다는 장점에서다.

또 사회적인 존재로서 시각을 기를 수 있고 성장한 후 다시 고향에서 활동하는 선순환 구조의 기반이 된다는 이유다.

강사들은 또 지역성을 담보한 관내 공공 또는 문화예술기관의 네트워크 구축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예술은 예술가와 참여자의 노력뿐만 아니라 삶이 이뤄지는 터전과 그들의 삶을 도울 수 있는 기관들의 유기적 지원아래 완성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김현진 바람꽃커뮤니티씨어터 대표는 “문광부 차원에서 토요일에 진행되는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와 지역의 공공기관 및 전문가 그룹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지역 네트원크를 통해 장기적으로 원활한 홍보와 효과적인 프로그램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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