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겨울은 지난 겨울보다 더 추워서 매서운데 눈까지 휘몰아친다. 어린 날을 생각해보면 이런 추위가 별스럽지는 않다. 1970년대 나의 유소년은 겨울이 겨울다워서 동장군의 눈바람이 아주 거셌으니까. 그동안 우리는 너무 따듯한 겨울을 즐겼는지 모를 일이다.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는 뱀처럼 꾸불거리며 흐르는 금강 상류에 둥지를 틀고 앉은 작은 마을이다. 강은 상류에서 가파르게 내려오다가 마을 앞에서 주춤거렸는데 그래서 강폭이 넓었다. 겨울이면 그 강이 얼어서 소달구지가 지나도 깨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강이 얼어갈 때 얼음배를 깨서 놀았고, 이쪽과 저쪽이 맞붙으면 썰매를 지치며 달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강은 얼음 밑을 흘러서 무주구천동으로 갔다.
임동식의 ‘친구가 권유한 눈꽃구경’은 금강이 흐르는 공주 근방의 풍경이다. 그는 육십이 넘긴 후부터 자연미술의 미학을 화농(畵農)으로 일구기 시작했다. 땅 농사짓는 벗과 더불어 그림 농사짓기를 수행하고 있는 것인데, 벗이 일하러 논밭으로 나갈 때 그도 같이 나가서 벗이 ‘권유한’ 풍경을 그리는 것이다. ‘눈꽃구경’도 그 중 하나다.
시골의 마을 어귀에는 당산나무가 아니어도 수백 년 수령(樹齡)의 품격을 뽐내는 나무들이 종종 있다. 논밭 사이의 둔덕이나 산 아래 밭두렁이 끝나는 경계지에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우뚝 서 있는 것이다. 나무는 온갖 새들의 쉼터이자 둥지이고 바람의 환승역이다. 나무는 봄여름가을 동안 푸르고 겨울이 되면 그야말로 나목(裸木)이 된다. 겨울나무는 맨 몸으로 찬바람을 맞는다.
맨 몸의 겨울 나목에 지금 눈이 내리고 있다. 바람 한 점 없이 눈은 고요하다. 하늘과 땅 사이가 눈의 침묵으로 짱짱하다. 나무는 홀로 수천의 팔을 벌려 눈꽃을 틔운다. 한 사람과 한 나무가 하늘과 땅 사이를 잇는다. 고요한 침묵의 눈꽃이 황홀하다.
아, 그런데 우리는 언제 저 눈꽃의 황홀을 구경할 수 있을까? 눈이 오면 사람들은 불평이 넘친다.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에서처럼 깨진 거울이 심장과 눈에 박혀 무엇이든 나쁘게 보듯 불만을 토로한다. 그들의 눈에는 눈(雪)조차 흉측한 그 무엇이다.
눈이 내리거든 조용히, 참으로 조용히 눈꽃의 아름다움을 구경할 일이다. 빛의 알갱이로 흩어지는 하얀 하늘 꽃의 숭고한 육체를.
김종길 미술평론가ㆍ경기도미술관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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