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쁠 때도 슬플 때도, 심지어 아플 때조차도 흐르는 것이 시간이다. 시간은 단 한순간도 정지한 적이 없다. 우리는 오며가며의 ‘사이’를 산다. 오는 것과 가는 것의 사이에서 존재를 깨닫는다. 사이의 틈을 인식하고 벌리고 싹 틔우면서 사는 것이 사람살이인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사이존재’의 주체들일지 모른다. 사이의 구속에 저항하면서 존재를 자각하니 말이다.
자기 존재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시간의 사이에 갇혀서 흘러가버리기도 한다. 분명히 오늘의 시간을 살았으나, 영혼은 어제에 속해 있어서 과거의 추억들만 꺼내 놓는 사람들이 있다. 미래의 새로운 시간이 흘러와서 현재를 뒤흔들어도 시간은 쉽게 탈색해 버리거나 블랙홀로 빠져버린다. 지금 여기에 존재하나, 그의 현재는 과거의 풍경 속에 갇혀서 홀로 외로울 것이다.
이상호의 ‘얼굴을 감싸 쥔 남자’도 홀로 외롭다. 남자는 드넓은 광야에서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푸른 하늘은 먹구름과 흰 구름이 바람에 휩쓸려서 온통 불안이다. 화면을 가득히 채운 남자의 육체는 어두운 대지와 불안의 하늘을 검은 바지와 흰 셔츠로 고스란히 전치시켰다. 세찬바람이 그의 등을 떠밀지만 그는 얼굴을 감싼 채 나아가지 않는다.
이 작품은 1985년에서 1988년 사이에 제작된 그의 선 굵은 목판화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았다. 그의 목판화는 조르주 루오의 회화적 선을 연상케 하나 존재의 구도와 상징적 메타포는 케테 콜비츠의 인물들을 떠 올린다. 반면, 채색화에서는 1980년대 유럽과 미국에서 전개된 신표현주의의 거친 붓질과 디에고 리베라의 멕시코 혁명벽화를 엿보인다. 그러나 이 그림은 그 어느 것도 아닌 오직 그의 것으로서 시간의 ‘사이’를 드러낼 뿐이다.
1986년과 1987년, 한국 사회는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의 외침으로 메아리쳤다. 청년 이상호는 대학의 교정에서 거리에서 판화를 찍고 걸개그림을 그렸다.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으로 무릎걸음을 걸으며 내일을 불렀다. 동료들이 불려가고 불타고 불안해 할 때마다 돌아앉아 얼굴을 감싸고 울었다. ‘얼굴을 감싸 쥔 남자’는 그렇게 1987년의 ‘사이’에서 깊게 울어야 했던 그의 자화상이다.
예술은 때때로 시간을 초월하고 타자를 감정 이입시킨다. 시대의 ‘사이’에 묻혔다 생각했던 이 그림이 최근에 자주 떠올랐다. 떠올라서, 부끄러운 2012년의 겨울을 보내고 새해는 또 어떻게 살 거냐고 물었다. 그때 그의 자화상은 지금 나의 자화상이다.
김종길 미술평론가ㆍ경기도미술관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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