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어주는 남자]정정엽의 ‘도시-나무에서’

어느 날 갑자기 불현듯, 얘기치 못한 순간에 느닷없이, 생각지도 않았던 것들이 그저 평범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 그렇지만 오래전부터 늘 그 자리에 있었던 것들이 일제히 저항하듯 당신의 눈을 점령해 들어왔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정정엽은 신도림과 구로 사이의 전철역 주변에서 느닷없이 그것들과 마주쳤다. 전철을 타고 수없이 오가며 반복했던 순간들이었으나 그날은 예기치 못한 순간이었다. 그것들은 마치 한 날 한시를 작정한 듯 그에게 달려들었다. 익명의 사람들처럼 서 있는 나무들의 존재! 그는 숨이 턱 막혔다.

그것들은 기찻길의 배경에 지나지 않았고, 도시 생태의 한쪽 귀퉁이에서 미세하게나마 겨우 존재의 한 가닥을 드러낼 뿐 하등의 ‘실존적’ 존재가치를 갖지 못했다. 설령 지워져도 그만이었고, 그림자에 묻혀도 그만이었다. 아니 어느 누구도 그것들의 실체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싹둑 잘려나간다 한들 눈 하나 꿈쩍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들이 생의 반란을 일으키듯 정정엽의 눈에 파고들었다. 황폐한 도시 속의 나무들은 그렇게 눈에 박힌 채 시간을 보냈다.

2001년, 인천에서 개인전을 하게 되자 그는 오랫동안 깊게 각인되었던 그 나무들을 화폭에 옮겼다. 눈에 박힌 그것들을 꺼내 배경 없이 오직 그들의 모습만을 그렸다. 어떤 것들은 한쪽의 어깨가 꺼졌고, 어떤 것들은 배가 옴폭 뜯겨나갔다. 어느 것 하나 불구 아닌 것이 없었다. 봄여름가을 수시로 절지당한 몸들은 모두 지체장애를 앓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캔버스 화면을 독차지한 채 모노드라마를 펼쳤다. 나홀로 주연이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의 구석구석, 세포 하나하나까지 그리지 않으면 안 될 만큼 그들은 아우성을 쳐댔다. 매연과 소음, 온갖 먼지들과 가위질로 시커멓게 멍이 들어서 나무의 몰골은 온데간데없이 흡사 유령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는 그들이.

오랫동안 여성주의 미학으로 한국사회의 여성문제를 성찰해 온 정정엽에게 그들 그 나무들, 그 유령의 실존들은 이 사회의 여성들과 다르지 않았다. 새 천 년의 시대령을 넘긴 2000년에도 이름 없이 사라지는 여성들이 태반이었고, 가정에서 노동의 현장에서 아니 한국사회 전반에서 여성폭력은 일상이었으니까. 나무에게 가해진 소외의 폭력이야말로 여성폭력과 같았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다수자들의 세계일지 모른다. 다수가 진리인 세계에서 소수는 설 자리가 없다. 언제부터 민주주의가 경쟁과 다수자들의 세계가 되어버린 것일까? 민주ㆍ인권ㆍ평화가 하나의 철학이라면 소수를 위한 예의는 기본이어야 한다.

 

김종길 미술평론가ㆍ경기도미술관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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