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하는 에듀클래스, 문화예술교육 철학과 기반 형성 방법 찾는 여행
#2. 영국 런던에 위치한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입구.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이른 아침, 개관 시간을 30여 분 앞뒀음에도 우산을 든 관람객의 줄이 100m를 훌쩍 넘어섰다. 유럽회화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소장품 때문에 관광객도 제법 있는 듯하지만, 현지인과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아니나다를까. 미술관에 들어간 (학생처럼 보이는 그들) 대부분의 관람객들이 전시장 곳곳의 의자에 앉아 한 작품을 주시하거나 전시작품을 펜으로 모사하는 등 면학 분위기다.
마냥 부러웠던 외국의 문화예술교육계 한 단면이다.
당시 고작 1~2명의 교사가 30~40명의 어린이를 두명씩 짝지어 세운 뒤 일렬로 30여분만에 미술관을 휙 돌고 그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는 우리네 풍경이 오버랩되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특별한 기획전이 개막하는 날이 아님에도 개관 전부터 줄 서서 입장을 기다리는 대학생과 관광객 등을 바라보며 썰렁한 우리네 다양한 예술공간을 떠올리며 부러움에 침을 꼴깍 삼키기도 했다.
무엇보다 부러웠던 그것은 어린이들이 미술관을 미술관답게 관람하는 태도를 갖추고 세계적 명화 앞에서 자신들의 눈높이에 맞춰 감상하는 모습이었다.
미술관이 전공자와 성인에게 이른 아침부터 줄 서서라도 입장하고 싶은 장소이자 배움의 터전으로 인식한다는 의식 그것이었다.
한 마디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뚜렷한 철학과 탄탄한 기반’이 배 아플 정도로 부러웠다.
도대체 저런 교육 풍경은 어떻게 조성할 수 있는 것인가, 성인의 머릿속에 어떻게 자연스럽게 저런 인식을 심을 수 있는 것인가.
지난해 6월 시작한 본보 연중 기획 ‘비상하는 에듀클래스’는 그 철학을 찾고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여정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종착역이다.
본보 시리즈 기획 기사는 ‘문화예술교육에 희망을 담자’는 목표로 20여 차례 이상 경기도내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다니고 관계자들과 더 나은 교육환경과 방법을 모색했다.
이 긴 여행의 출발에 앞서 열린 자문위원 회의에서 자문위원단은 ‘한국 문화예술교육의 현실은 운영 철학의 부재 및 제반 여건으로 인해 기형적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기획시리즈가 한국 문화예술교육의 가능성을 도출해내고 예술강사는 물론 정책입안자 등 관계자들이 문화예술교육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도내 문화예술교육 현장에는 이미 철학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철학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다양한 실험이 진행중이었다.
지난해 한여름 문턱에서 찾은 부천 대안공간 ‘아트포럼 리’는 학교밖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했다. 수업 시간만 정해져 있을 뿐, 교과 과정과 주제ㆍ평가 점수 등은 없었다.
아이들은 자유롭게 상상하는 것이 현실이 되는 것을 보며 치유되고 성장한다는 철학이 담겨 있다.
또 다른 문화예술교육현장에서도 이 철학은 공통분모였다.
맛있는 예술재료를 통해 아이들이 다양한 사람들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놀이예술을 즐기면서 스스로 치유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모든 프로그램의 기반이었다.
차상위계층 가정과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참여하는 ‘하늘꿈 캡틴플레닛의 대신정원’, 시골 마을에 살며 방과 후 갈 곳 없는 아이들에게 연극과 각종 문화예술활동을 가르치는 ‘예술문화단 놀패의 몸 열고 마음 열고’, 줄어든 또래 친구들과 폐교에서 신나게 즐기는 ‘창문아트센터 소풍가는 날-우리동네 락! 락! 락!’ 등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수많은 문화예술교육이 공통된 교육 철학을 갖고 있었다.
문화예술은 자유로운 창의성과 자신 안에 가둬버린 나를 이끌어내는 도구이며, 예술가와 교사 등은 아이들 그 길을 스스로 밟을 수 있도록 안내판 역할만 한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문화예술교육과 철학은 아이들에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경기문화재단 문화예술교육센터의 ‘지역특성화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을 통해 문화예술을 통해 다른 지역과 구분되는 도드라진 특징을 갖는 특정지역 학습자들에게 지역주민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인성과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활동을 지원하는 교육도 진행됐다.
수원 화성동의 주민으로 구성된 ‘못골문화사랑’이 결혼이주여성과 중도입국이주청소년 등을 대상으로 소통과 지원을 위해 진행한 ‘다문화요리’가 그것이다.
또 화성 반월동 자율방범순찰대원들을 대상으로 한 ‘빙빙돌자, 춤으로 동네한바퀴’도 있었다. 춤을 배우며 활기찬 중년의 삶을 찾은 어른들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인 문화예술교육 현장이었다.
문화예술교육에 있어 역차별 대상이기도 한 성인이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통해 어떻게 변화하고 잃어버린 삶의 가치와 열정을 얻을 수 있는 지 드러냈다.
이처럼 성인과 어린이들은 그 교육 방법은 다르지만 공통된 철학이 존재했고 가치있는 결과를 가져왔다.
공통된 교육 철학처럼 현장의 예술가와 교사들이 하나같이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 있었다. ‘교육 매뉴얼 제작’이 그것이다.
다양한 방식의 문화예술교육이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진행되면서 각각의 결과를 낳고 있는 시점에서 이 모든 것을 제대로 정리하고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장기간 임상실험 프로젝트처럼 각종 경험과 사례, 효과 등을 기록함으로써 철학이 존재하는 우리나라 문화예술교육 기반을 확립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제 ‘비상하는 에듀클래스’는 종착역에 도착했다. 이번 기획 시리즈를 통해 도출된 각종 문화예술교육 현장이 우리나라만의 철학과 방법을 정리하는 근간이 되기를 바란다. 프랑스와 영국 등 세계 각 국의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부러워하지 않는 그 시작이 되기를 응원해 본다.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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