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중국인 친구 2명이 일주일 동안 수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들은 화성행궁 답사, 연무대 국궁체험뿐만 아니라 수원호스텔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수원의 모든 것을 오감으로 만끽했다.
하지만 돌아가기 전날 문제가 생겼다. 전통식품 등은 어디서든 구입한다지만 정작 수원의 느낌을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달할 기념품이 없었던 것이다. 난감했다. 결국 꿩 대신 닭으로 인사동을 헤맸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 수원은 국내ㆍ외 관광객들이 돈을 내고 먹을 ‘수원갈비’는 있지만 양손 가득 구입해서 돌아갈 수원 냄새 나는 ‘기념품’은 없다. 이쯤 되면 생각날 법한 것이 어느 도시에나 있는 OO8경이 아닐까 싶다. 8경을 이용한 기념품은 관광도시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수원시에 수원8경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기존에 사용하던 수원8경 그림이 1986년 기노철 화백이 그린 저작권 등록 절차를 마친 개인작품이었다는 것. 대가 없이 그림을 사용한 시는 기 화백에게 보상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때문에 시는 속 시끄러운 일을 정리하고 관광도시로 발돋움하고자 지난해 초 ‘새로운 수원8경 제작’ 사업을 추진했다. 지역 역사학자 등을 초청해 토론회를 열고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도 만들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기존 수원8경이 ‘일본인이 만든 것’이라는 논란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결국 새로운 수원8경 제작을 위해 시민공모를 진행했고, 8경 선정까지 마쳤다. 그런데 또다시 ‘우리 조상이 만들었다’는 반박 주장이 나오면서 사업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사업이 시작된 지 1년여가 지났지만 아무 것도 결정된 게 없다. 결국 백지에 낙서만 하다 또다시 백지 한 장을 만든 꼴이다. 사업 예산 3억 중 토론회 등에 사용된 몇천만원을 제외하고는 시민들의 염원이 담긴 2억여원은 허공에 둥둥 떠있는 상태다.
아쉬움이 남는다. 역사는 현시대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시가 준비한 토론회는 목적 그대로 의견 수렴을 위한 자리였다.
시 공무원이 그들의 주장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당초 ‘새로운 수원8경’ 제작이 목표였다면 시가 발벗고 나서 역사 왜곡 논란을 정리하고 시가 주체가 된 ‘새로운 수원8경’ 제작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관광도시는 사업의 중심에 수원시가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장혜준기자 wshj222@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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