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네 매장에 사람들 많지. 조만간 내가 찾아갈게 도와줘라. 경기고법 설치 해야 하는데.” “알았어. 걱정하지 말고 와.” 수원변협 부회장이 묻고 이마트 분당점장이 답했다.
군복(軍服)만 입혀 놓으면 사람들이 이상해진다더니 교복(校服)이 그렇다. 동창(同窓)이란 단어 하나에 모두가 풀어졌다. 50줄 중년들이 서로를 ‘○○새끼’라고 불렀지만 누구도 싫어하지 않았다. 모임은 그렇게 학연이란 해방구에서 ‘술’과 ‘수다’로 젖어갔다. 이때 등장한 게 ‘경기고법’이다. 생뚱맞은 화두 앞에 잠깐의 어색함이 흘렀다. 하지만 ‘교복’의 또 다른 마력은 잠깐의 어색함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곧 ‘경기고법 도와주자!’라는 일성(一 聲)으로 뭉쳤다.
그즈음 인터넷에 ‘경기고법’을 치면 이런 기사가 떴다. ‘경기도의회 경기고법 광교신도시 유치 결의안 제출’ 제목 안에 내용이 다 있다. 경기고법을 광교신도시에 가져오자는 결의안이다. 경기고법을 설치시키기 위한 노력이다. 도의회의 결기도 느껴진다. 그런데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유치’라는 단어가 이상하고, ‘광교’라는 지역이 이상하고, ‘부지’를 보는 기준이 이상하다.
유치 아닌 설치 촉구해야
왜 자꾸 ‘유치’라고 말하나. ‘유치’를 말할 때가 아니라 ‘설치’를 말할 때다. 대법원에 촉구할 것도 ‘설치 계획 수립’이고, 국회에 촉구할 것도 ‘설치 법안 통과’다. 설치촉구가 먼저 가고 지역 유치전(戰)이 뒤를 이어야 한다. 혹 두 순차(順次)의 간극이 밀접히 붙는 일도 있다. 그렇더라도 ‘유치촉구’가 ‘설치촉구’보다 앞서가는 경우는 없다. 누가 떡을 준다고 해야 배추김치 먹을지 무 김치 먹을지를 따지는 거 아닌가.
‘광교’라는 특정(特定)도 그렇다. 지난 13일 토론회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은 “명칭이야 어떻든 간에…”라며 경기고법 단어 사용을 꺼렸다. 그게 현실이다. 충청 고법은 없다. 대전 고법이다. 경북 고법은 없다. 대구 고법이다. 우리 지역 고법도 경기고법이 아니라 수원고법으로 가는 게 맞다. 김문수 도지사도, 염태영 시장도, 수원변협 회장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경기고법이라는 표현을 고집하고 있다.
왜겠나. 성남ㆍ평택ㆍ안양ㆍ의정부 시민을 다 참여시키기 위해서다. 103만 수원시민의 힘만으론 부족하니 1천300만 경기도민의 뜻을 모으려는 것이다. 고법설치에 소극적인 대법원의 ‘수원고법’과 고법설치에 적극적인 경기도의 ‘경기고법’ 사이에는 이런 닮은 듯 다른 차이가 있다. 이런 마당에 경기도의회가 갑자기 ‘광교’를 들고 나왔다. 경기보다 작고, 수원보다도 작은 광교를 명패로 걸고 나왔다. 나머지 도민들에겐 한순간에 ‘광교만의 일’처럼 됐다.
고법 부지 기준에 대한 오판도 문제다. 경기고법 설치 비용은 대략 3천억원이다. 여기서 땅값이 2천억원이다. 1년에 고작 800억원 가지고 청사 짓고 고치는 대법원에선 절대 나올 수 없는 돈이다. 그렇다고 복지를 위해 국방비에까지 손대는 정부가 내어줄 리도 없다. 궁여지책으로 등장한 것이 ‘영통 기재부 땅’이다. 관리청 변경만으로 당장 1천억~2천억원이 해결된다. 예산 핑계에 재갈을 물릴 수 있는 더 없는 길이다. 좋은 땅이 아니라 돈 안 드는 땅을 찾아야만 하는 대단히 현실적 이유다.
돈 안드는 땅이 정답이다
다들 열심히 뛰고 있다. 수원변협 부회장의 취중(醉中) 활동, 이마트 분당점장의 조건 없는 약속, 경기도의회의 ‘경기고법 광교신도시 유치 결의안’. 모두가 열정이고 희생이다. 힘 보태주고 손잡아줘야 한다. 다만, 그 방향이 정반대로 가고 있다면 그건 바로 잡아야 한다. 설치를 촉구해야 할 때 유치를 촉구하면 바로 잡아야 하고, 1천300만 도민의 공동 사업으로 가야 할 때 20만 지역민의 특색 사업으로 가려 하면 바로 잡아야 한다.
경기고법 설치는 1천300만 도민을 협력과 하나됨으로 이끄는 화두지만, 광교고법 유치는 31개 시군을 경쟁과 난타전으로 몰고 가는 화두다. 잘못된 역(逆)주행 한 번이 평택시민 등 돌리게 하고, 의정부시민 짜증 나게 하고, 영통주민 관심 접게 할 수 있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경기고법, 광교 내걸면 도민 등 돌린다]
김종구 논설실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