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땅에 묻힌 보육원생, 그 아이의 눈에는

김종구 논설실장 kimjg@ekgib.com
기자페이지

‘생활지도교사들이 아이를 야산으로 끌고 갔다. 나무에 붙여 세운 뒤 대걸레 자루로 사정없이 때렸다. 아이가 뒹굴자 미리 준비한 나이론 끈으로 나무에 묶었다. 15번의 몽둥이 질이 더 가해졌지만 묶인 아이에겐 피할 방법이 없었다. 이어 “힘 빼지 말고 묻어 버려”라는 지시가 내려졌고 널찍한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강제로 눕혀진 아이 몸 위로 봉분처럼 흙이 덮였다. 교사 한 명은 ‘땅이 굳어야 한다’며 밟기까지 했다. 30분 만에 꺼내진 흙범벅의 아이는 다시 보육원으로 끌려가 25차례의 몽둥이질을 또 당했다.’

3일 오후 7시30분 양주의 어느 야산. 12살짜리 아이는 ‘남의 물건을 훔쳤다’는 이유로 그렇게 맞고, 묶이고, 묻혔다. 정부가 인가한 보육원에서 정부가 인정한 사회복지사들에게 당한 ‘죽음의 매질’이었다. 그런데도 아이에겐 억울함을 호소할 사람이 없었다. 상처 난 다리를 내밀어 볼 사람도 없었다. 잔인하게 맞은 그 건물에서, 잔인하게 때렸던 그 사람들과 함께 또 밥 먹고 잠잤다. 돈 없어 자신을 맡겼던 아버지와 경찰복 입은 아저씨들이 찾아온 그 순간. 그때까지의 열흘을 아이는 그렇게 버텼다.

가난에 멍든 아이를 왜 또

어떤 이는 대한민국을 복지 천국이라 부른다. 그 중에도 보육 복지를 최고로 친다. 20여개의 보육 공약을 내 걸었던 후보가 대통령이 됐으니 그런 소리 나올 만 하다. 보육을 위한 아빠의 달 제정, 다자녀 가정에 주택 특례 공급, 영아 종일제 돌봄 서비스까지 없는 게 없다. 단어와 순서만 다른 12개의 보육 공약을 내놨던 다른 후보가 당선됐더라도 이런 기대는 같았을 것이다. 이미 시행되고 있는 보육 복지도 즐비하다. ‘김 소장’은 “우리 수원시의 복지과(科) 예산만 2천억원이야”라며 자랑한다.

이쯤 되면 보육 복지 천국 맞다. 그런데 여기엔 한가지가 빠져 있다. 돈 없어 버림받는 아이들을 위한 보육이다. 애초부터 우리가 말하는 보육원과 정치인이 말하는 보육은 달랐는지 모른다. 우리가 아는 보육원은 ‘부모가 없거나 경제적 사정 등으로 건전하게 양육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아동을 대신 보호ㆍ양육하는 시설’이다. 정치인이 말하는 보육은 ‘투표권 있는 유권자가 아이를 기르거나 교육하는 데 필요한 제반 경비 및 제도’다. 앞의 보육은 ‘불쌍한 아이들’이 객체고, 뒤의 보육은 ‘표를 가진 유권자들’이 객체다.

육아 휴직을 통한 아빠의 달 도입? 그건 아빠가 있는 아이들 얘기다. 다자녀 가정에 주택 특례 공급? 그건 가정이 있는 아이들 얘기다. 영아 종일제 돌봄 서비스? 그건 직업을 가진 부모가 있는 아이들 얘기다. 가난해서 버려지는 아이들과는 처음부터 상관없는 공약이다. 전국 280개 보육원에 맡겨져 있는 1만7천명의 아이들과는 애초에 연결되지 않는 정책이다. 가난이 주는 생이별은 복지 천국 대한민국에서 버려지고 외면된 지 이미 오래다.

1998년 어느 날, IMF로 붕괴되는 한 가정의 생이별 장면이 TV로 중계됐다.

-그토록 먹고 싶던 피자에 아이가 신났다. 꿈에 그리던 놀이공원까지 갔다. 아빠가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는 걸 알 리 없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보육원을 찾았다. ‘여기가 어디야’라고 묻자 ‘친구들과 노는 곳’이라고 답했다. 또래 아이들이 있는 방으로 아이가 들어갔다. ‘잠깐만 나갔다 올게’라며 아빠는 문을 나섰다. 이때부터 카메라는 유리창 너머의 아이를 찍었다. 아이의 눈빛이 이상해졌다. 갑자기 벽에 몸을 부딪치며 까무러치듯 울어댔다. 아빠가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눈치 챈 것이다. 서너 살짜리 아이도 능히 알 수 있는 천륜의 본능이었다. 창문 안 아이는 ‘아빠’를 찾으며 절규했고, 창문 밖 아빠는 ‘못 할 짓 같아요’라며 오열했다-

이러고도 복지 천국인가

그렇게 생이별하고 들어왔을 아이가 국가 인증 2급 사회복지사들에게 맞고 묶이고 묻혔다. 누군가 나서 보육원 운영을 감사라도 해줬으면 좋겠고, 사회복지사 실태를 파악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걸 해줄 경기도의회는 지금 또 다른 보육 복지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돈 있는 집 손주들에까지 보육비 대주자는 ‘손주 보육비 지원 조례안’을 놓고 되느니 안 되느니 싸우고 있다고 한다. 그날 밤 양주시 야산에서 맞고 묶이고 묻혔던 그 아이가 우리 아들 우리 손자였더라도 이렇게 모른척 할 수 있을까.

[이슈&토크 참여하기 = 땅에 묻힌 보육원생, 그 아이의 눈에는]

김종구 논설실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