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수도권 풀어도 영ㆍ호남 표심 안변한다

김종구 논설실장 kimjg@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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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DJ 한화갑, DJ 비서실장 한광옥, DJ 전위병 이경재. 영원한 DJ 사람들이고 대표적 호남 정치인들이다. 이들이 줄줄이 박근혜 후보 캠프로 합류했다. 무슨 장(長)이니 무슨 특보(特補)니 하는 자리까지 맡겨졌다. 대선(大選) 기간 호남행(行) 박 후보 곁엔 늘 이들이 있었다. 호남 지역민들에게는 인사 탕평을 약속하는 박 후보의 ‘100% 대한민국’ 약속도 전달됐다. 전문가들은 ‘호남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전했다. 12월 19일 뚜껑이 열렸다. 득표율 10.3%. 달라진 건 없었다.

문재인 후보가 영남에 들인 공(功)도 대단했다. 부산이라는 태생부터가 무기였다. 노무현 당선 이후 굳어진 민주당의 대선 공식이기도 하다. 대선을 50여일쯤 앞두고 발표되는 여론조사에서 TK(대구 경북) 지역이 꿈틀댔다. 40% 정도의 지지율이 야권인 문재인 안철수 후보에게 갔다. TK까지 밀고 올라온 야권 기세에 ‘박근혜 필패론’이 고개를 든 것도 이 즈음이다. 그때도 전문가들은 ‘TK 표심이 달라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결과는 득표율 19%. TK 역시 달라진 건 없었다.

‘선거 때 보자’는 공갈

이런 걸 두고 철옹성(鐵甕城)이라 한다. 별수를 다 써도 동서(東西)로 갈라진 표심은 움직이지 않는다. 천지개벽 할 변수가 생겨도 저기선 저 당 찍고, 거기선 그 당 찍는다. 정치 9단 DJ의 동진(東進) 정책도 힘 한 번 못 쓰고 사라졌다. 열린 우리당의 전국(全國) 정당 포부 역시 이 벽에 부딪혀 깃발을 내렸다. 돌이켜 보면 박근혜 후보의 ‘호남 좌절’과 문재인 후보의 ‘영남 좌절’을 특별하게 여길 일도 아니다. 그저 망국적 지역 정치를 확인시켜준 또 하나의 점(點)일 뿐이다.

세상이 다 아는 영남 표심이고 호남 표심이다. 그런데 그 지역 정치인들이 이 뻔한 표(票)를 움켜쥐고 흥정하자며 목청을 높인다. “정부가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면 내년 지방 선거 때 새누리당 안 찍겠다. 알아서 하라”며 으름장이다.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가령, 수도권 규제를 풀었다고 치자. 그래서 영남 민심이 나빠졌다 치자. 그러면 2014년 영남에서 민주당 소속 시장ㆍ군수들이 무더기로 탄생하나. 아닐 것이다. 반대로 수도권 규제를 강화했다고 치자. 그래서 호남 민심이 좋아졌다고 치자. 그러면 2014년 호남에서 새누리당 소속 시장 군수들이 무더기로 탄생하나. 아닐 것이다. 어차피 2014년 6월4일 저녁 개표 현황판의 색깔은 정해져 있다. 수도권 규제를 풀었다고 빨간색이 노란색 되지 않고 안 풀었다고 노란색이 빨간색 되지 않는다.

답답한 건 이런 공갈포가 ‘수도권 규제 완화’ 얘기만 나오면 등장한다는 거다. 그리고 매번 쏠쏠한 재미를 보고 끝난다는 거다. ‘다음번 선거 때 보자’고 겁주면 ‘수도권 규제 안 풀겠다’며 백기가 올라간다. 지금까지 그렇게 왔고 지금 또 그러고 있다. 수도권 규제 완화 얘기가 나온 게 지난달 27~28일이다. 29일 아침 비수도권이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새누리당, 내년 선거에 재미없을 것’이라며 협박했다. 그러자 이틀 뒤 주무 장관이 ‘없었던 일’이라며 발을 뺐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정치적 토시까지 달았다.

왜 이러나. 혹시 정치 행위와 통치 행위를 구분 지은 개론(槪論)도 모르는 거 아닌가. 애초 수도권 규제는 정치행위로 묶은 게 아니다. 그린벨트 그을 때 국민 의견 물은 적 없고, 수정법 만들 때 여론조사 해본 적 없다. 박정희 대통령의 결심으로 한 것이고, 전두환 대통령의 결심으로 한 것이다. 우린 그걸 국가 원수(元首)의 통치행위라고 칭했다. 이제 그 규제의 용도가 30, 40년 지나면서 폐기될 시기에 왔다. 그러면 그 작업도 통치 행위로 풀어가는 게 맞다. 정치를 기웃거리며 쭈뼛댈 일이 아니란 얘기다.

통치행위로 규제 뚫고 나가야

대통령의 신념이 뭔지는 이미 공개됐다. “규제 완화는 찔끔찔끔 풀어서 될 일이 아니다”라는 워딩(Wording) 속에 다 들어 있다. 그러면 그 통치신념을 실천에 옮겨 ‘확’ 푸는 일만 남은 거다. 그런데 이를 밀고 가야 할 ‘수족’(手足-장관)들이 찔끔거리고 있다. 더구나 일부 바람잡이들이 흔들어대는 ‘허수(虛數) 협박’에 겁먹어서인 것 같아 보이니 더 한심스럽다. 나라 좀 살려 보자며 새로 시작한 수출 관계 기관 회의. 그 회의보다 몇 배 큰 국부(國富)와 고용(雇用)의 곳간이 지금 수도권에서 썩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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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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