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균의 스케치여행] 회암사지

서너 달에 한 번쯤 잠시 거처를 옮겼다가 되돌아오는 습관을 버거워하면 안된다/서너 달에 한번쯤, 한 세 시간쯤 시간을 내어 버스를 타고 시흥이나 의정부 같은 곳으로 짬뽕 한 그릇을 먹으러 가는 시간을 미루면 안된다. 죽을 것 같은 세 시간쯤을 잘라내어 시간의 뭉치에다 자신의 끝을 찢어 묶어두려면…-이병률의 ‘여전히 남아있는 야생의 습관’처럼 의정부에 가서 부대찌개나 먹을 요량으로 길을 나섰다가 초파일에 절부터 가보자는 생각에 회암사지를 찾았다.

조선왕실의 지원을 받던 최대의 사찰임을 엄청난 규모의 절터가 확인시켜준다. 3대화상 지공과 나옹과 무학이 절을 짓고 융성케 했다는 내력도 천보산 자락의 부도들이 전하고 있다. 뻐꾸기 울음소리 아카시아향기에 묻어오는데 일본과 미국에서 돌아온 복제품불화들은 박물관에 갇혀 쏟아지는 조명을 무방비로 받아내고 있다. 숭유억불로 묻힌 폐사지에 송홧가루 흩날리는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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