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성남시, 지금 깡패 영화 찍나

김종구 논설실장 kimjg@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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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본 장면이다. 연두색 조끼 복장의 80여 명이 LH 정문에 나타났다. 대표로 보이는 사람이 뭐라 외쳤다. ‘단속을 시작한다’는 얘기인듯했다. 곧이어 양쪽이 뒤엉킨 ‘바퀴벌레 싸움 신’이 시작됐다. 여기저기서 여자들의 비명이 들렸다. 한참을 이러고 나서 80명은 되돌아갔다. 그런데 이건 다음 날 본 게임을 위한 예고였다. ‘연두색’쪽 수가 300명으로 늘었다. 굉음을 내는 포크레인까지 가세했다. LH 쪽 여직원 한 명이 포크레인 밑에 드러누웠지만 소용없었다. 정문 옆 철제 구조물이 파괴됐다.

이런 장면도 떠오른다. 검은 양복 차림의 수십 명이 차에서 내렸다. 이어 봉고에 실렸던 야구 방망이가 나눠졌다. 앞에는 최익현(최민식)과 최형배(하정우)가 섰다. 나이트클럽 정문으로 밀고 들어간다. 진입하려는 쪽과 막으려는 쪽이 격렬히 충돌했고 잠시 뒤 싸움이 평정됐다. 분함에 씩씩대는 김판호(조진웅)가 꿇어 앉았다. ‘니 오늘 좀 맞자’는 형배의 한 마디로 승자의 폭행이 시작됐다. 맥주병이 머리로 날아갔고, 쓰러진 얼굴에 담뱃불이…. 더 자세한 묘사는 ‘19금’이다.

공무원으론 부족해 포크레인까지

앞의 것은 성남시 주연의 ‘LH와의 전쟁’이고, 뒤의 것은 최민식 주연의 ‘범죄와의 전쟁’이다. 앞의 것은 KBS 9시 뉴스, MBCㆍSBS 8시 뉴스에서 대박을 쳤고, 뒤의 것은 500만 관객을 모아 대박을 쳤다. 이런 두 개의 전쟁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 ‘LH와의 전쟁’이든 ‘범죄와의 전쟁’이든 미성년자들에게 보여줘선 안 된다는 거다.

이건 행정이 아니다.

불공정 행정이다. 시는 이번 단속을 통해 LH 본사 사옥의 건축, 위생, 도로, 공원, 광고물, 복지 등을 점검하겠다고 했다. 얼핏 들으면 말이 되는데 곰곰이 생각하면 말이 안 된다. 비상구 계단에 물건 쌓아두지 않는 건물이 드물고, 현수막 한두 개쯤 내걸지 않은 건물이 드물고, 경계 벗어난 쇠말뚝 한두 개쯤 세워두지 않은 건물이 드물다. 평소에 단속했어야 할 일상 행정의 영역이다. 그런데도 수십 년 된 LH 사옥에 느닷없이 포크레인을 앞세우고 들어갔다. 불공정하기로 작정하고 들어간 행정이다.

폭압 행정이다. 이날 성남시 공무원들은 모두 연두색 조끼를 입었다. 뒤에는 ‘성남시 공무원 봉사단’이란 글씨가 새겨 있었다. 이 봉사단의 목적은 현장 봉사와 복지 봉사다. 건물에 밀고 들어가고 울타리 자빠뜨리는 게 본디 목적이 아니다. 그런데도 격에 안 맞는 이 옷을 입어 연두색 물결로 만든 속내는 뻔하다. ‘다수 위력으로 상대방을 외포(畏怖)케 하겠다’는 것이다. 연두색 조끼에 손끝만 대도 공무집행방해죄로 엮겠다는 뜻이다. 집단의 위력을 앞세워 상대를 무력화하겠다는 폭압 행정의 전형이다.

퍼포먼스 행정이다. 일련의 흐름이 마치 영화 촬영하듯 이어졌다. 우선 ‘LH와의 전면전에 들어간다’고 발표해 언론의 주목을 예약했다. 다음날 기자들이 모였고 정복 경찰 200명까지 늘어섰다. 그 사이로 ‘연두색 단체복’ 80명이 등장하며 ‘그림’을 만들었다. 다음에는 콘셉트를 바꿔 포크레인을 추가했다. 포크레인의 무자비한 ‘바가지질’에 울타리가 무너져 내리면서 ‘그림’은 절정을 이뤘다. ‘경고-위협-파괴’로 완벽히 짜여진 시리즈였다. 공무원 380명의 역할은 애초부터 불법 단속이 아니라 퍼포먼스 출연이었다.

도대체 뭐 하는 짓인가.

불공정ㆍ폭압ㆍ퍼포먼스 행정

독직(瀆職)이란 게 꼭 돈 먹어야만 성립하는 게 아니다. 단속권 있는 행정기관이 불공정을 작정하고 권한을 휘두르면 그게 독직이다. 힘 있는 행정기관이 위력까지 동원해 쳐들어가면 그게 독직이다. 법률적 대응수단을 가진 행정기관이 여론을 선동하며 설쳐대면 그게 독직이다. 22일과 23일, 이틀간 LH 사옥 정문에서 있었던 성남시의 행정은 독직이다. 원칙을 넘어선 월권이고 단속을 빙자한 행패다. 전국에서 청사 제일 크고 예산 제일 많고, 그래서 힘도 제일 세다는 성남시가 한 짓이어서 더 그렇다.

아마도 그날 동원된 380명의 공무원들은 이렇게 말할 거다. “정상적인 행정행위를 깡패 영화와 비교하다니, 모독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 아주 일부는 이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내가 그날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우리 공무원이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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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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