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문화원의 시대공감]⑧포천문화원 ‘동화로 보는 포천설화’

어린이 동화작가들, 현장답사ㆍ글쓰기ㆍ삽화 ‘척척’… 향토사 절로 배워요

옛말과는 달리 요즘은 동화책이 홍수처럼 쏟아져 넘치는 시대다. 오히려 보관할 장소가 부족해 버릴 책을 고르는 시대가 됐다. 특히 요즘 젊은 엄마들은 아이가 100일이 지나면 적게는 몇만원부터 많게는 몇백만원짜리 전집을 구입해 집안을 도서관으로 만들어 준다. 정작 부모는 책 한 권 읽지 않으면서 말이다.

유아와 어린이가 경험할 수 있는 세계는 제한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화책은 어린이들에게 상상의 세계를 누리도록 자유를 주는 멋진 산물이다. 그러나 정작 요즘 아이들은 동화책을 잘 보지 않는다. 동화책보다 재미있는 것이 훨씬 많아진 탓이다. 한글을 깨우칠 정도의 나이가 되면 아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게임에 관심을 가진다. 인터넷과 휴대폰에는 연령별, 테마별로 즐길 수 있는 게임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책을 읽으면서 머리 아프게 상상하지 않아도 인터넷과 각종 영상매체로 인해 시각적으로만 발달해가는 아이들. 풍요로운 사회가 낳은 모순이다.

기술의 발달이 동심을 사로잡고 있는 시대에, 경기도 포천지역의 설화와 각종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해 동화책으로 만든 당찬 아이들이 있다.

포천이란 지명은 조선 태종 13년(1413)에 생겨난 이름이다. 2013년은 포천 정호 600년을 맞아 포천시에게, 16만 시민들에게 있어 매우 의미있는 해이다. 현재까지 포천시는 천혜의 자연 환경을 바탕으로 역사와 문화의 숨결이 흘러왔으며 관광자원이 무궁무진한 경기 동북부의 관광·휴양도시로 성장해 왔다.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포천지역은 무궁무진한 신화, 전설, 민담 등을 포함한 구비문학(口碑文學)이 풍성한 곳이다.

이에 포천문화원(원장 이만구)는 조만간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는 구비문학, 특히 설화를 현지에 가서 조사하고 채록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해 지난 2000년에 ‘향토문화자료집-포천의 설화(이근영ㆍ이병찬 엮음)’를 발간했다. 이렇게 모아진 자료가 인물담, 사건담, 동물담, 귀신담, 소화(笑話), 지명 유래담 등 100여 편이 넘었다.

포천문화원은 지역의 무궁무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지난 2011년부터 향토대중화사업의 일환으로 ‘동화로 보는 포천설화(우리 포천의 옛날이야기)’ 사업을 3년째 운영하고 있다. ‘동화로 보는 포천설화’ 사업은 포천 지역 초등학생들이 지역설화를 직접 동화책으로 제작하고 이를 향토문화 교육자료로 활용하고자 시작됐다.

2011년 첫해에는 도평초, 왕방초, 이곡초, 포천초, 포천노곡초등학교 관내 5개교, 21명의 어린이들이 참여해 총 10편의 동화를 엮어 책으로 800부를 발간했다. ‘궁예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명성산’, ‘호랑이골 할머니들’, ‘맑고 아름다운 신비의 계곡, 백운계곡’ 등 어린이들은 포천지역의 특색있는 설화를 지도선생님과 상의하고 현장을 답사하고 직접 글을 쓰고 삽화까지 그렸다. 포천지역의 어린이 동화작가가 만든 책은 포천 관내 53개교 초등학교와 도서관에 배포됐다. 예산은 1천100만원에 불과했다.

2012년에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동화로 보는 포천설화’ 사업에 참여하겠다는 학교와 어린이들의 경쟁이 치열했다. 지난해에는 도평초, 영평초, 외북초, 포천초, 포천노곡초등학교의 어린이 27명이 참여해 ‘우리 포천의 옛날 이야기-두번째 이야기’를 900부 발간했다. 어린이 동화작가들이 만든 책은 향토문화 교육자료로 인기가 좋아 동화책 좀 구해달라는 요청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난처한 상황도 있었다며 사업 담장자 신진희 향토사팀장은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특히 지난해 영평초등학교의 경우, 김도희, 서준영, 신 유, 안지수 등 6학년 전체 학생 10명이 참여해 ‘양문 이서구 대감’, ‘용아이’ 두편의 동화를 만들어냈다.

김도희 학생(영중중학교 1학년)은 “초등학교 6학년을 마치면서 친구들과 협력해 한 권의 책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 충격이었고, 좋은 추억이 되었으며 무엇보다 내 고장 포천에 대해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포천문화원은 올해도 ‘동화로 보는 포천설화-세번째 이야기’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렇게 초등학생들이 어린이 동화작가로 위촉돼 포천설화를 재구성해 동화책으로 엮는 사업이 순항할 수 있었던 것은 포천문화원의 ‘철저한 사업계획’, 경기도포천교육지원청과 포천시의 ‘아낌없는 지원’, 참여학교 교사와 학생들의 ‘열정’, 이 삼박자가 딱딱 잘 맞았기 때문이다.

이만구 원장은 “이번 사업에 열의를 갖고 참여해 주신 학교장 선생님, 지도선생님, 어린이 동화작가 여러분께 감사를 드리며, 올해에도 좋은 동화책이 만들어지도록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드린다”며 “동화책 발간을 통해 우리 포천지역만이 갖고 있는 재미있는 설화들을 잘 정리해서 고장의 설화문학이 앞으로 더욱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동화책이 어른들의 손에 의해서 알게 모르게 뭔가를 가르치려는 교훈적인 이야기인 데 반해, 포천 어린이들이 만든 동화책은 어린이 입장에서 포천 지역의 설화와 학자, 정치가, 충신, 독립운동가, 효자 등 다채로운 이야기를 가장 쉽고, 재미있게 재구성하고, 그림까지 그린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부모들은 책 사주고 학원 보내는 것만으로 좋은 환경 만들어줬다고 생각하겠지만 요즘처럼 모든 게 풍족한 아이들은 그래서는 절대 책 안 읽는다. 도시의 아이들이 학원을 다니며 컴퓨터, 휴대폰 게임에 빠져 있는 동안 포천의 어린이들은 친구들과 지역 향토사를 배우며 책을 만들고 있다. 2013년 포천의 어린이들이 어떤 이야기가 담긴 동화책을 만들어낼 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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