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어주는 남자]정우철의 ‘강정 구럼비’

우리나라 국토의 머리를 백두산이라고 한다면 한라산을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그것을 힘차게 발돋움하고 있는 발로 상상한다. 대지를 딛고 선 아버지의 발 어머니의 발. 그러나 한라산은 그 자체로 또한 제주도의 몸이다. 한라산은 두무악(頭無嶽), 삼신산으로도 불린다.

높이 1천947.269m의 두무악은 북위 40°이남에서 제일 높다.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면서, 산정에 오르면 은하수를 잡아당길 수 있다는 뜻의 한라(漢拏)의 섬. 그 섬에 치유의 신 흰 사슴 사는 못(白鹿潭)이 있다. 백록담이다. 백록담은 중생대 백악기의 뒤이며 신생대 제4기의 앞인 제3기에 불을 삼키며 솟았을 터.

약 6500만 년 전부터 180만 년 전까지 포유류 조류 경골어류가 번성했고, 말 코끼리 코뿔소 등의 선조가 발전했으며, 원시식충류가 진화된 영장류에서 인류가 출현했을 시간이다. 불이 잠들고 물이 솟았던 그 시간에 구럼비(용암단괴)가 탄생했다. 강정 앞바다 해안을 감싸고 있는 길이 8백 미터가 넘는 거대한 너럭바위 구럼비는 불의 몸이었을 테니.

정우철의 사진작품은 신생대의 그 불의 몸을 불의 시학으로 바꾼 듯 영롱한 빛을 발한다. 구럼비가 탄생했던 무한의 시간을 공유하며 지금 여기의 한 사람이 몸을 담근다.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시간을 견디며 신성한 풍경을 이룬 구럼비의 몸과 범섬의 몸을 이렇듯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이 있었을까. 사람의 몸은 100년을 견디지 못하고 스러진다. 그런 유한의 몸이 무한의 몸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두 몸이 영성으로 교감을 이룰 때 일 것이다.

인간의 탐욕은 자주 풍경을 해체하고 대지의 몸을 부순다. 지금, 신성한 구럼비의 몸에 쇠말뚝을 박고 구멍을 뚫어 폭약을 터트리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들이다. 굴착기로 까고 부수는 데는 한계가 있을 터! 수천 수백만 년의 역사와 신화를 깡그리 쓸어버리려는 잔혹한 학살이 자행되고 있는 곳은 바로 저기, 저 사진 속 구럼비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일강정 최고의 풍경이었던 구럼비는 물론이고, 그곳에 공생했던 붉은발말똥게, 맹꽁이, 동남참게, 층층고랭이 그리고 그 앞 바닷물 속을 황홀하게 수놓았던 연산호까지 속수무책으로 스러지고 있다. 2002년부터 추진되어서 지정되고 등재된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 경관보전지구 1등급, 천연기념물 연산호 군락을 위한 문화재 보호구역, 멸종위기종의 대규모 서식지, 역사 유물 산포지로서의 강정 따위는 일순간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 아, 이제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아이들에게 이 아름다운 풍경의 신화를 전해줄 수 있단 말인가!

김종길 미술평론가ㆍ경기문화재단 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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