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절반이 지나갔다. 그 절반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을까? 곰곰이 지나간 것들을 떠올려 본다. 이것저것 소소한 것들이 피었다 진다. 큰 덩어리는 없고 자잘한 것들뿐이다. 다시 남은 반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한다. 욕심이 앞선다. 욕심을 내려놓자고 다짐하니 무엇 하나 선명하지 않다.
자기 삶의 자국을 선명하게 새기면서 산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도 1년 365일 중 어느 하루라도 기억에 남는 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머리를 한쪽으로 갸우뚱 거리며 생각을 굴린다. 그러다가 7월은 정전협정 60주년의 달이잖아, 라고 읊조렸다. 뜬금없이 튀어나온 그 말이 다시 권용택의 그림으로 옮겨 붙었다.
권용택의 ‘그리운 금강산’에는 선명한 자국이 있다. 193㎝ 크기의 가로 넓이 화폭(畵幅)을 쭉 찢은 듯 산허리를 일직선으로 파 놓은 거대한 참호 같은 그 무엇이. 지금 작가는 DMZ 철책 앞에 서서 저 너머의 금강산을 보고 있는 중이다. 바로 앞의 철책과 저 북쪽의 철책 사이가 비무장지대라면 금강산은 그 너머의 너머에서 푸른빛으로 빛나며 웅장하게, 신령스럽게, 벅찬 감동으로 펼쳐져 있다. 흰 구름이 넘실거리는 저 산하의 세계를 우리는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권용택의 그림 속 현실은 그런 그리움이 현실이 된 세계다. 철책은 녹슬어서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하다. 이미 철책의 부분들은 실밥 터지듯 터져서 여린 풀잎들처럼 흩날리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의 눈은 단숨에 철책을 넘어 숲으로 난 외길을 달리는 중이다. 그러다가 불쑥 꺼진 벌거숭이 참호 속 불꽃을 만난다. 그 불꽃은 6ㆍ25의 불꽃이요, 분단의 불꽃이다. 푸르고 푸른 비무장지대의 땅 밑에서 63년 동안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비극의 불꽃이다.
우리가 넘지 못하는 것은 DMZ를 에둘러 싸고 있는 철책이 아닐 것이다. 그것들은 쉽게 녹슬고 부서질 테니까. 이곳과 저곳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보이지 않는 장벽은 꺼지지 않은 전쟁의 작은 불씨다. 저 불씨가 사그라져야만 우리는 평화의 큰 숨을 쉴 수 있을 것이다. 불꽃이 살아있는 한, 전쟁은 아직 완전히 끝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2008년 7월11일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군에 피격, 사망한 뒤 금강산 관광은 중단되었다. 평화를 향해 내달리던 남북한의 평화동행도 일순간에 깨졌다. 불씨 때문이다. 5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기로에 서 있다. 어떻게 저 불을 끄고 동행의 길로 접어들 것인가, 라는 판단 앞에.
김종길 미술평론가ㆍ경기문화재단 기획팀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