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어주는 남자]이윤기의 ‘DMZ-노동당사’

안양천의 안개를 두고 시인 기형도는 ‘아침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고 했으나, 이제 그 샛강은 예전의 샛강이 아니어서 아무도 주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샛강 주변의 공장들은 폐허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채 역사의 강물에 잠겼을 뿐이다.

며칠 동안 하늘은 마치 안양천의 안개들처럼 구름이 잔뜩 끼어서 흘러갔다. 1970년대, 80년대의 샛강이 저랬을까 싶은, 검은 구름떼가 길게 늘어져서 빠르게 흘렀다. 경기 북부에서는 연일 폭우가 내렸고 남부는 어둡고 습했다. 그러다가 가끔 낮은 빗줄기를 쏟아내곤 했다.

2009년 화성시 동탄면 목리에 살았던 이윤기는 ‘아랫집’과 ‘DMZ’를 연이어 그렸다. 두 작품은 연작으로 묶이는 작품은 아니나 한 쌍이다. 화면을 둥글게 구성한 것과 푸른 하늘 아래 오래된 집을 그려둔 것이 그렇다. ‘아랫집’이 그가 살았던 작업실이고 ‘DMZ’는 그 아랫집에 상상을 잇대어서 그린 강원도 철원의 노동당사 건물이다.

‘아랫집’을 비롯한 목리는 동탄2신도시 건설에 따라 2009년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사라졌다. 이윤기는 목리에 살았던 마지막 주민이다. 다른 예술가들과 주민들이 떠난 뒤에도 그곳에 남아 그는 작품을 제작했다. 그즈음 경기도 미술인들과 DMZ구간을 답사했다. 그는 철원에서 건물의 뼈만 남은 노동당사를 만났고, 아랫집을 떠올렸다.

신도시 개발정책이 밀어 붙이는 현실 속의 아랫집은 역사 속 노동당사와 대칭공간이다. 거대한 아파트 단지는 소소한 역사의 한 흔적이었던 작은 마을 목리를 흔적도 없이 지울 것이다. 그리고 그곳을 오래 기억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20세기 한반도, 어두운 역사의 실체로 서 있는 노동당사를 기억하는 이도 또한 그럴 것이다. 지금 서 있는 노동당사는 비현실이면서 초현실이다. 그 장소의 과거는 안개에 묻혔고 현재는 빈껍데기일 뿐이니까.

아랫집을 날던 새들이 노동당사 위로 떼 지어 날고 있다. 아랫집에서 문밖을 바라보던 그가 노동당사로 들어가 손을 내민다. 새는 경계를 초월하고 그는 화해를 요청하는 것. 시간은 결코 흩어지는 법이 없다. 어제를 이어서 오늘이 되고, 오늘이 아제를 이룬다. 7월 17일(음 6월 10일) 제헌절, 안개가 걷히거든 구름이 개이거든, 평화의 주식을 사들일 일이다. 이 나라의 아제를 위해.

 

김종길 미술평론가ㆍ경기문화재단 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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