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어주는 남자]이흥덕의 ‘아시아의 꿈’

18세기에서 19세기로, 다시 20세기로의 세기별 이행과정에서 역사연구의 아이러니로 쉼 없이 등장하는 것은 ‘서구화’에 대한 인식과 평가일 것이다. 18세기 이전부터 서구는 조선에 존재했으나 18세기를 전후로 인식의 큰 변화를 겪는다. 가장 큰 변화는 과학과 종교에서 시작된다.

청(淸)을 통해 실학과 천주학이 본격적으로 유입되면서 조선의 역사는 소용돌이친다. 특히 정조가 죽은 뒤의 조선사회는 실학과 천주학에 대한 전통유학의 반격, 서구세력화의 척결, 민중의 봉기를 비롯해 반봉건 사회에 대한 정치적 혁명시도가 잇따르면서 격변기를 겪게 된다. 일본은 그 틈을 이용해 대동아공영론을 내세우며 아시아 식민화 정책을 노골적으로 전개했다.

우리에게 ‘서구화’는 피비린내와 함께 시작되었다. 실학자들의 시대는 짧게 명멸했고, 천주학쟁이라 불렸던 교인들은 인산인해(人山人海)로 끌려가 피의 순교를 당했다. 실패로 그친 봉기와 혁명의 당사자들 또한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고, 일본의 야망은 거침없어서 피의 전쟁을 불사했다. 그 모든 것들의 역사행위에는 ‘서구화’라는 ‘근대화’가 명분이었다.

2013년 7월 24일, 장마가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다. 20세기가 저문 지 13년의 세월이 흘렀다. 경술국치 100년을 보내고도 3년이 더 흘렀다. 해방과 동시에 분단이 되었고, 전쟁이 터졌고 정전협정을 맺었고, 그로부터 60년이 흘렀다. 4.19 군사쿠데타 유신 광주 …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대추리 용산 강정 … 흐르고 흘러서 우리는 고립된 ‘남한사회’ 내에서 아시아를 상상만 할 뿐, 계급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 제국 식민으로 살아간다. 비가, 비가 그치지 않는다.

이흥덕의 ‘아시아의 꿈’은 바벨을 이룬 동아시아 역사의 휘황하고 어지러운 굴곡의 만다라다. 그는 조선의 근대화의 풍경으로부터 시작해 대한제국의 근대화, 대한민국의 근대화 그리고 그 근대화를 쥐고 흔들었던 제국들의 욕망까지를 인물 도상의 표정과 상황과 흔적들로 가득 채웠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연상시키는 푸른 배경을 바탕으로 꾸물꾸물한 인간들의 핑크빛 표정들에는 수 세기를 살았던 조선과 한국, 아시아의 뒤틀린 역사가 난무하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더러운 기념탑과 같고, 안개 속의 불더미와 같으며, 빗줄기에 아른거리는 현실 너머의 꿈과 같다.

 

김종길 미술평론가ㆍ경기문화재단 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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