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문화재단, 문화이용권 현장을 가다]1.전몰군경 미망인, 연천을 가다

경기도지부 미망인 200명, 아픔 보듬고 추억 나누며 ‘애잔한 하루’

21세기는 문화의 시대이다. 문화가 개인의 삶은 물론 사회, 국가의 구조와 경쟁력까지 좌우할 정도로 그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문화를 복지적 측면에서 배려하는 것을 ‘문화복지’로 이야기할 수 있다. ‘문화복지(cultural welfare)’의 정책개념으로 가장 잘 반영한 포로그램이 바로 ‘문화이용권 사업’이다.

‘문화이용권 사업’은 문화카드소지자를 제외한 도내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그리고 문화향유 욕구는 있지만 지리적, 신체적 어려움으로 인해 문화생활이 어려운 도민들을 위한 문화복지사업이다.

경기문화재단은 각 계층별 특성에 따라 크게 ‘낮달 문화소풍’, ‘가가호호(家家好好)·문화교감’, ‘활생(活生) 문화공명’ 등 3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에 본보는 총 5회 경기문화재단이 2013 문화이용권 사업을 통해 문화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소외계층을 발굴해 체계적이고 알찬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6월 27일은 6·25전쟁 정전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3년 넘게 계속 됐던 6ㆍ25 전쟁은 1953년 7월 27일, 유엔군과 북한군 사이에 휴전 협정이 조인됨으로써 전쟁의 포성은 멈췄다. 전쟁의 총성은 멈췄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서로의 가슴속 아픔은 깊어지고 있다.

정전 60주년을 앞두고 지난 23일 장대비가 내리던 날,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 경기도지부(지부장 신정순) 200명의 회원들이 특별한 외출에 나섰다.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는 6·25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60여 년의 세월을 홀로 자녀를 돌보며 생계를 책임져 온 고령의 미망인들과 나라를 위해 희생한 군인과 경찰의 유족 중 ‘국가유공자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해 연금을 받는 유족인 처를 회원으로 하는 보훈단체다.

정전 60주년을 맞아 정전협정일인 7월 27일을 전후해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풀어내고 평화를 염원하는 모든 사람들이 소통하고 화합할 수 있는 다양한 평화문화행사가 전국적으로 열리고 있다. 이에 경기문화재단은 젊은 나이에 사랑하는 남편을 조국에 바치시고, 홀몸으로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 내신 자랑스러운 어머니인 미망인을 위한 연천나들이를 준비했다.

연천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라는 우리나라의 아픈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이날 미망인들은 남과 북을 가로막은 철책과 지뢰, 군부대로 상징되는 DMZ(비무장지대)가 있어 한국전쟁의 아픔을 보여주는 연천에서 애잔한 하루를 보냈다.

미망인들의 첫번 째 방문지로 경기도 전곡리 구석기 유적의 영구적인 보전과 활용을 위해 건립된 전곡선사박물관을 찾았다. 미망인들은 소녀처럼 눈을 반짝이며 줄을 서서 동굴벽화를 비롯해 박물관 곳곳을 구경했다. 특히 매머드의 아래턱뼈로 울타리를 치고 입구는 매머드의 어금니로 아치를 만들어 장식한 ‘매머드뼈 막집’을 보고선 입을 다물지 못하셨다.

타임머신을 타고 구석기시대로의 시간여행을 다녀온 미망인들은 시원한 수박 화채 한 그릇으로 장마철 무더위를 날렸다.

이어 미망인들은 재인(才人)의 전설이 내려오는 연천읍 고문리에 위치한 재인폭포로 향했다. 연천 7경 중 하나인 재인폭포의 아름다운 모습을 27m 높이에서 볼 수 있게 스카이워크 형태의 전망대가 설치돼 있어 어르신들은 시원한 폭포 물줄기 감상에 푹 빠질 수 있었다. 스카이워크 바닥이 투명해 발 밑 아래의 폭포와 현무암 협곡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곳이었지만 이날은 많은 장맛비로 재인폭포의 물줄기의 시원함을 만끽하지 못했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미망인들은 재잘재잘 이야기를 하며 사진을 찍으며 추억남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미망인들은 연천군 군남면 군남홍수조절지를 방문했다. 임진강 홍수조절용인 군남댐 저수위가 이날 최고치를 넘겨 가동 이후 가장 많은 양의 물을 방류하는 모습을 보며 미망인들은 옛추억에 잠겼다.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 경기도지부 하남시지회 윤옥란(81) 지회장은 “지난 겨울 발목이 다쳐 거동이 힘들었는데 오늘은 같은 상처를 가진 미망인들과 함께 역사를 품은 비극의 땅 연천의 곳곳을 둘러봐서 아주 행복했다”며 “아침부터 장대비가 내려 걱정했는데 다리 아픈 나를 위해 이동할 때마다 비가 안 내리는 거 봐서는 하늘에서 남편이 비구름을 꽉 잡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21살 때, 전쟁터에서 남편을 잃고 백발무성한 노인이 되어도 남편이 그립다는 윤옥한 지회장은 하늘에 있는 남편 덕에 연천에서의 잊지 못할 추억 한조각을 만들었다고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200명의 미망인들에게 연천은 낭만적인 여행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허나 민족의 상처와 아픔 위에서 각자의 비슷한 경험을 지닌 미망인들과 아픔을 나누며 건강한 노년을 이야기하는 여행임은 분명했다.

문형순 경기문화재단 교육나눔팀장은 “이번 ‘낮달 문화소풍’은 7월 27일 정전 60주년을 앞두고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 등에서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미망인들이 속한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 경기지부 약 200명의 할머니들을 모시게 되었다”며 “미망인회 회원 여러분은 사회의 참어머니로서 삶의 개척자이고 가정의 수호자로 오늘 먼길에도 불구하고 기꺼운 마음으로 참석해 주신것에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고 말했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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