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어주는 남자]김재석의 ‘새벽’

장마가 지난 뒤의 여름밤은 더위가 길다. 한 밤이 되어도 후텁지근한 기색이 가시지 않는다. 찬물로 시원하게 등목이라도 해야 그나마 좀 낫다. 그런 날은 잠도 잘 오지 않고 설령 잠이 들었다 해도 깊지 않아서 뒤척이기 일쑤다. 더군다나 비정규직 일자리를 전전해야 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손 없는 날’을 제하고 나머지 시간을 빈둥거려야 하니 그조차 고역이지 않을 수 없다.

김재석의 ‘새벽’은 한 노동자의 삶의 단편을 치밀하게 관찰한 뒤 정치(精緻)하게 그려낸 회화적 수작이다. 그는 ‘예술은 현실을 반영한다’는 현실주의 미학의 창작방법론을 충실하게 따랐으나 화면의 구성과 이불 오브제의 묘사, 그리고 하부공간의 여백과 대응하는 상부공간의 초현실적 배치를 통해 단순해질 수 있는 이야기구조에 미학적 무게를 더하고 있다.

그림은 상중하(上中下)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윗부분은 여성과 여성이 보는 세계다. 그 세계는 그저 불 꺼진 방의 천장일 수 있다. 그러니 텅 빈 방의 천장을 응시하는 여성이 상단부의 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림에서 보듯이 그녀가 보는 세계는 깊고 어두운 바다 속 심해다. 흰 잠옷과 검은 바다, 그리고 푸른 눈의 흰 물고기. 어쩌면 저 물고기가 그녀의 심리적 주체일 것이다.

엎드려서 베개에 파묻혀 잠든 남자. 그림 아래는 남자가 꿈꾸는 세계다. 남자의 옷은 여자의 옷과 달리 우중충한 잿빛이다. 그의 세계는 텅 비었다. 아래 여백은 그가 추구하는 세계일 것이다. 우리가 보는 것과 달리 남자의 세계는 맑고 투명하다. 반면, 여자의 세계는 풀리지 않는 현실적 무게로 어둡고 깊다. 남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서 곤히 잠들었으나 여자는 잠들지 못한다. 두 사람의 엇갈리는 심리적 상황을 잘 대변하고 있는 것이 알록달록한 이불이다.

중앙에서 가로로 길게 배치된 이불은 그 이불과 맞닿아 있는 여자와 남자의 뒤통수를 통해 그들 부부가 당면한 복잡다단한 현실상황을 은연중 드러낸다. 기하학적인 문양은 풀리지 않고 해석하기 힘든 현실세계를 상징하는 것일 수 있다.

옷도 갈아입지 않고 곯아떨어진 남자와 내일을 걱정하는 여자. 그러나 둘의 세계를 여전히 이어주고 있는 것은 이불이다. 현실은 부조리하고 모순에 차 있으나 두 사람은 그런 세계를 견디며 건너가고 있다. 우리는 여자의 오른 손이 이불을 건너 남자의 세계에 가 닿아 있음을 볼 필요가 있다.

김종길 미술평론가ㆍ경기문화재단 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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