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이 해야 할 거증(擧證)책임을 피의자에게 떠넘기는 수사다. 지금 같았으면 인권 침해로 뭇매를 맞았을 기법이다. 그런데 20년 전 검찰에는 그런 것도 있었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수사가 그리워진다. 도무지 정리되지 않는 ‘가난뱅이 아버지와 부자 아들’의 관계를 보면서다.
선용씨는 김우중 전 회장의 셋째 아들이다. 아버지는 대한민국 전체 미납추징금의 84%인 17조원을 못 내고 있다. 그런 아버지의 아들 재산이 상상을 초월한다.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번찌(Vun Tri) 골프 클럽의 주인이란다. 2010년에 지분 100%를 인수했다고 한다. 자산 규모 600억원짜리다. 김 전 회장 측에서 나온 설명이 ‘법적으로 문제 될 게 없다’다. ‘사실이 아니다’가 아닌 걸 보면 골프장 주인은 맞는 거 같다.
땅ㆍ골프장 산 아들들
이제 나이 서른여덟. 국적은 포기했으니 서양 나이로 계산하면 서른여섯 안팎이다. 그런 그가 갖고 있는 재산이 60,000,000,000원! 우리 아들들이 그만큼 벌려면 얼마나 걸릴까. 잘 나가 연봉 5천만원을 받는 청년이라면 1200년 걸린다. 더 잘 나가 연봉 1억원을 받는 청년이라도 600년 걸린다. 물론 밥도 굶고 옷도 안 사입으며 살았을 때 얘기다.
그렇게 아들이 사들인 골프장에서 아버지는 열심히 운동중이라고 한다.
돈 없어 추징금도 못 낸 아버지다. 단돈 10원을 상속했어도 위법이다. 그렇다고 600억원을 설명할 기업경영의 이력도 없다. 도저히 설명 안 되는 600억원. ‘수사관 Y’였다면 이랬을 거다. ‘지금부터 이 종이에 600억원을 만든 경위를 쭉 적어라. 못 적으면 넌 구속이다.’
재국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이다. 아버지는 1천672억원의 추징금이 밀려 있는 전 재산 29만원짜리 가난뱅이다. 그런 아들의 재산에 세상이 놀라고 있다. 서초동 땅, 파주 땅, 서초동 건물, 평창동 땅, 연천 땅…. 800억원대 회사의 50.53%짜리 대주주다. 그 회사 수장고에서는 미술품 400여 점이 쏟아져 나왔다. 전문가들이 가격을 매기겠다며 열흘째 진땀을 빼고 있다. 둘째 아들과 딸의 재산은 치지도 않았다.
그 아버지에게 2003년 판사가 물었다. ‘측근들과 자식들이 추징금을 안 내줍니까’. ‘그 애들도 겨우 생활하는 수준이라 추징금을 낼 돈이 없습니다’. 때마침 아들이 서울과 경기도를 옮겨다니며 부동산을 사 모을 때였다. 아버지 눈에는 이런 부동산 사재기도 ‘겨우 생활하는 수준’으로 비쳤던 모양이다. 아버지의 미납 추징금 1천600억원. 하필 정부가 우리 아들들을 위해 내놓은 ‘청년전용창업자금’ 1년치다.
29만원밖에 없는 아버지가 물려줬을 리 없다. 아들 회사의 출판업계는 계속된 불황에 문 닫는 회사가 즐비하다. 설명 안 되는 800억원이다. ‘수사관 Y’라면 또 이랬을 거다. ‘서초동 땅, 평창동 땅, 파주 땅, 연천 땅, 이거 무슨 돈으로 샀는지 자세하게 적어라. 못 적으면 아버지 비자금이다.’
불완전ㆍ부족한 수사
그 ‘가난뱅이 아버지와 부자 아들’들이 사는 이 시대, 우리 주변에는 방황하는 청년 실업자가 30만명이다. 그 수만큼의 아버지들이 속을 태우고 있다. 이들의 눈엔 모든 게 이상할 뿐이다. 추징금 안 내고도 경호 받으며 골프장에서 소일하는 아버지들도 이상하고, 그런 아버지 곁에서 땅 사며 골프장 사들이는 아들들도 이상하다. 여기에 16년간 두고 보다가 이제서야 뛰어들어간 검찰도 이상하다.
20여 년 전. ‘수사관 Y’가 그토록 노리던(?) 공무원은 어떻게 됐을까. ‘수사 기법’ 얘기를 들은 지 얼마 안 있어-한 달 정도 후로 기억하는데- 시청 국장실에서 근무 중이던 공무원이 체포됐다. 그리고 하루 뒤 구속됐다. 뇌물 혐의를 스스로 인정했다고 검찰이 발표했다. 축재(蓄財) 과정을 설명하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졌다고 전해졌다. 그때의 ‘수사관 Y’는 지금도 후배들에게 ‘선사(禪師ㆍ선법에 통달한 스님)’로 통한다.
세상에 완전한 범죄는 없다. 불완전한 수사가 있을 뿐이다. 세상에 완벽한 돈세탁도 없다. 부족한 수사의지가 있을 뿐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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