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작가 이윤기가 개인전을 앞두고 짧은 편지 한 통을 보내왔다. “아름답지만, 아름답지만은 않은 풍경에 서 있습니다. 차갑지만, 차갑지만은 않은 붓을 듭니다. 목리를 살았던 존재들과 마주선 채 그대로 멈춥니다.”
그는 당시 화성시 동탄면 목리라는 마을에 작업실을 두고 있었다. 슬레이트 지붕을 얹었으나 나름대로는 집의 골격과 풍채가 늠름한 빈집이었다. 목리는 수원에서 멀지 않았으나 마을이 깊어서 예술가들이 숨어들기에는 적당했고 이미 몇 명의 예술가들이 살고 있었다. 그는 이곳을 ‘아랫집’이라 불렀다. 다들 그 집보다는 윗터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마을이 ‘동탄2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사라지게 된 것이다. 마을은 작아서 소박했으나 작가들에게는 어머니의 품처럼 넓고 컸던 모양이다. 그는 상실의 슬픔을 작품으로 새기면서 나에게 편지를 쓴 것이다.
작품 ‘아랫집’은 그 집의 뒤를 가로 지르는 길가에서 본 풍경이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아랫집의 뒤통수인 셈이다. 그는 가끔 그림 속의 인물처럼 저렇게 홀로 서서 마을 사람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음악을 듣곤 했다. 지붕 위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고양이와 밭두렁을 떼 지어 몰려다니는 오리들을 엿보기도 하고. 그는 이 작품에 아랫집의 현실과 상상의 기억을 덧대어 ‘하나의 풍경’으로 연출했다.
둥근 화면이미지는 충돌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도로에 세우는 볼록 반사경을 차용한 것이다. 단순히 둥근 풍경이요, 그 삶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픈 작가의 마음이 저렇듯 둥글게 표현된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는 이미 그보다 2년 전에 실제 볼록 반사경에 자화상을 그린 바 있다. 볼록 반사경은 자칫 다른 쪽 도로의 차량이 보이지 않아 충돌할 수 있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세운다. 그렇다면 ‘아랫집’ 장면은 이쪽이 아니라 저쪽의 보이지 않은 풍경의 상황일 터!
신도시 개발과 마을 해체, 이주의 삶을 직접 체험한 작가는 한국사회의 이면으로 들어가 부유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분단국가의 현실과 마주했고, 그런 미학적 인식의 폭과 깊이를 그림에 담았다. 그의 그림언어는 시골의 순박한 아이들의 말처럼 맑고 투명해서 알아듣기 쉽고 편하다. 그러나 으레 상처받은 아이들이 그렇듯이 천천히 오래도록 집중하고 있으면 그 투명한 깊이에서 슬픈 목울대가 울컥 솟아오른다. 지금도 그는 화성의 집과 경기창작센터를 오가며 풍경의 목울대를 그리고 있다.
김종길 미술평론가ㆍ경기문화재단 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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